그거 자소서용 취미 아니고 진짜 취미야?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취미는 독서였다. 옛사람들의 위대한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라거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고 그냥 책이 재밌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저 너머의 지식을 아는 게, 내가 결코 만나보지 못할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게 너무 재밌었다.
주말이 되면 항상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부모님의 도서대출증까지 이용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빌려왔다. 10권씩, 15권씩 욕심을 내어 책을 빌리고 항상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책을 읽다가 부모님께 눈 나빠진다고 혼이 나곤 했다.
초등학교 때 외국에서 살게 되어 한국 책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집에 있는 온갖 한국 책들을 모두 섭렵했다. 삼국지, 상도, 이제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이 저 책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읽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참 재밌게 읽었다.
다시 한국에 들어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도서관은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점심을 먹고 무료하다 싶으면 도서관에 들러 서가를 서성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빌려오고, 방과 후에 도서관에 잠시 들려 친구를 기다리며 만화책을 읽기도 했다.
요즘은 쉬는 시간에 점심시간에 학교에서 책 읽는 애들을 왕따 시키는 '책따'라는 것도 있다는데,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교육열이 높은 곳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책 좋아하는 친구들만 사귀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책따'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시험이 끝나면 같이 서점에 놀러 가 책을 구경하고, 문구류를 사기도 하고 재밌는 책이 있으면 서로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 첫 술자리에 갔을 때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자 돌아오는 그게 진짜 취미냐는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거 자소서용 취미 아니고 진짜 취미야?
세상에 자소서용 취미라는 게 따로 있는 거였나, 독서가 취미인 사람 처음 봤나.
여러모로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술자리라는 것 자체도 이해하진 못했었기 때문에 그때는 그냥 이런 게 대학문화이구나 싶어서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이후 대학생활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나는 책이란 존재와 점점 멀어졌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은 가볍게 갔다 오기에는 너무 귀찮고 먼 곳에 있었고, 대학교 도서관은 무거운 책을 빌려 집까지 들고 가는게 일이었다. 결정적으로는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웹소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귀찮게 도서관까지 가서 책을 빌려와야 할 필요 없이 핸드폰으로 바로 볼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 장르에 짧고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스토리까지 웹소설은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종이책을 읽지 않고 온갖 유행하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나는 어떤 계기로 다시 독서를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그래 독서가 취미구나.." 하는
떨떠름한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대학교 새내기 때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20대 중반이 되니 이게 참 난감한 반응이다. 상대방이 진짜 내 취미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닐 테고 피차 서로 할 말도 없는데 스몰 톡이나 할 겸 물어본 거였는데 이렇게 되니 서로 웃는 거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취미가 독서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내 대외적인 취미는 유튜브와 웹소설이 되었고(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상대방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에 관한 이야기는 먼저 꺼내지 않는다.
어쩌다 독서가 이런 취급을 받는 취미가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