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by 소소

한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마주치고 사소한 일에도 함께 꺄르르 웃고 가끔은 속상한 일을 털어놓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의 인연은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내 삶의 어느 시절을 함께 채워줬다.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의 엄마들, 회사 옆자리 동료, 학창 시절 친구들까지.

그들과 주고받았던 말들과 서로의 삶에 스며들었던 시간들이 아직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도 있지만 그 시절에 느꼈던 따뜻함, 끈끈함, 웃음은 어딘가 마음 한쪽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때는 몰랐던 의미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인연이란 그런 것 같다. 흘러가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내게 특별했는지 깨닫는다.


서론이 길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선 그들의 존재를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나에게 그 인연들은 그저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아니라 내 삶을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간 이정표 같은 존재였으니까.


유치원에 간 아이를 기다리며 함께 보낸 오전.. 커피 한 잔을 들고 서너 명이 도란도란 모여 나누던 대화들.

그리 중요한 이야기들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지던 순간들이었다.

어떤 엄마는 아기 반찬을 잔뜩 만들어 나눠줬고 또 어떤 엄마는 늘 말없이 웃기만 했다. 누구누구 엄마로 불리며 서로의 이름도 잘 몰랐지만 그 짧은 시기 동안만큼은 ‘같은 시간, 같은 마음’을 공유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엔 뭐 먹을지 고민하며 쓸데없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퇴근 무렵엔 서로 눈치를 보며 누가 먼저 나갈지 망설이던 모습들. 그 때의 대화도 웃음도 이제는 흐릿하지만 그 때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들과 주고받던 카톡이 자주 떠올랐다. 하지만 어느새 그 연락들도 자연스럽게 줄었고 그러다 전화도 메시지도 서서히 멈췄다.


처음엔 섭섭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이제 이 인연은 끝인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시절인연은 ‘그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관계라는 것을.

붙잡지 않아도 아쉬워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들도 지금 어디선가 잘 살아가고 있기를 여전히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이기를 그 시절의 나처럼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그 안에 서로가 없더라도 함께한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가끔은 그 시절로 돌아간 꿈을 꾼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얼굴들. 눈을 뜨면 모두 사라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포근하다. 그런데.. 그거면 된 거 아닐까? 굳이 연연하지 않아도 괜히 그리워하지 않아도 그들은 내 인생의 어느 계절에 분명히 존재했던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그 시절의 나도 그들과 함께였던 나는 분명히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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