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와의 전쟁

by quietlucid

"이것은 내 직업과 필드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시골길을 운전하면서 나는 비장하게 다짐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학생들 기말 페이퍼를 채점하다가 잠시 운동 가는 길이었다. 성적 입력 마감일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며칠 전 학과 교수회의에서 각자 AI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공유했다. (이 대화를 이제 한다고?)


몇년동안 학과 회의에서 한 마디도 안 했던 내가 손을 번쩍 들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다음 학기에는 페이퍼 다 없애버리고 싶어."

학부교육 디렉터를 맡고 있는 동료가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인문대 교수다. 글쓰기 교육을 포기할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진작에 지쳤다. GPT 등장 직후 AI 정책을 위반한 사례는, '이 놈이 나를 바보로 보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명명백백했다. 본문에 참고문헌 주석을 10개 넘게 달아놓고 참고문헌 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거나, 뒤늦게 제출한 참고문헌을 살펴보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리스트업 해놨다거나.


아직도 이런 케이스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제는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아이들이 상당히 교묘한 방식으로 AI를 이용해서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학부생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문헌을 굉장히 매끈하게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인용하는 케이스. 나 박사과정 때 이 책 엄청 힘들게 읽었거든. 근데 니가 이걸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고?


이번 학기의 한 수업에서는 자유 주제의 케이스 스터디를 시켰는데, 여러 명의 학생들이 똑같은 논문을 인용했다. 엄청 유명하고 많이 인용되는 논문. 그러니 GPT가 많이 추천해줬겠지. 케이스 스터디가 다 다른데 똑같은 논문을 인용한 것을 보고 화가 솟구쳤다. 게다가 몇학기 전부터는 generative AI의 제한적 사용을 허용하고, 활용했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는지에 대해 첨부하게 했는데, 이를 지키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이런 짜집기 페이퍼를 몇날 며칠 채점하다 보면 현타가 온다. 과연 이 참고문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가를 추적하다가 한 페이퍼를 놓고 몇 시간을 쓰다 보면 분노가 차오른다. 내가 이 짓하려고 박사 따고 교수됐나...


학기 중간에 제한적 사용을 허용했던 방침을 바꿔 전면 금지로 바꿨다. 그리고 기말을 채점하는데 똑똑하고, 놀라운 라이팅 실력을 지녔으며 무엇보다 창의적/비판적 사고를 보여줬던 학생 둘의 참고문헌이 엉망이다. 틀린 부분을 다 잡아내서 긴 피드백과 함께 D를 때리자 죄송하다는 이메일이 온다. 기말이라 너무 바빠서 참고문헌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generator를 이용했다고. 그래 바쁜 건 이해하지. 그리고 잡아 떼는 애들도 많은데 너네는 참 착하구나.


이렇게 하루면 끝날 줄 알았던 채점은 성적입력 마감일까지 이어지고...

며칠동안 운전대를 잡으며 비장함은 계속됐다.

"이것은 내 직업과 필드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마감하고 챗 지피티한테 "chatGPT를 사용해서 페이퍼를 쓰는 학생들때문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교수에 대한 시"를 봄은 고양이로다 문체로 써달라고 시켰다. 아래는 결과물:

--

페이퍼는 챗지피티로다
복사와 붙여넣기의 털을 가진
매끄럽고 빛나는 문장들이
의미 없이 그르렁거리며 흘러오도다


각주는 늘 정확하고
논지는 언제나 그럴듯하나
아무도 쓴 적 없는 사유는
어디에도 없도다


교수는 밤중에 커피로다
루브릭과 양심 사이에서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AI의 숨결을 맡노라

--


자신감 쩌는 챗지피티.

"각주는 늘 정확하고 논지는 언제나 그럴듯하나"? 이거 무슨 자신감임? 너 각주 다 틀리고 논지도 겉만 번지르르하고 똑같은 문장 구조 반복하잖아. 자기성찰 못하는 지피티 같으니라고 ㅋㅋㅋ















작가의 이전글종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