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나 사용기
그러니까 쉬엄쉬엄 하라는 위로를 받았다.
연말이라는 핑계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고, 이리 갔다가 저리 가는, 이걸 반복하는 내 마음을 들킨 거다. 민망함도 잠시 뿐, 가다 말고 다시 멈춘다. 처음 이 상태를 자각했을 때는 업무뿐이었던 것 같은데. 이게 이 정도의 전염성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하루 일과, 퇴근 후 생활에서도 미적대는 중이다. 어제는 정말 일찍 자고 싶었다. 쌓인 집안일을 쳐다보고, 또 그저 쳐다보았다. 멍 때리기는 아니었지만, 이 방, 저 방으로 오가며, 해야 할 일만 빼고 다른 일을 했다. 머리 한 편으로 생각은 열심히 했다. 시험공부 앞두고 책상 정리에 몰두했던 것처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내일 할 수도 있는데? 큰일 날 일도, 뭐라 할 사람도 없다. 내일 하면 덜 귀찮을까? 처음 하는 일도 아닌데, 도대체 이렇게 싫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생각에만 30분을 쓰고 말았다.
맙소사, 아까운 내 30분. 일단 그냥, 절반만 하자 싶어서, 그렇게 반, 하고 남은 일의 반, 또 그 남은 일의 반의 반을 하고 보니, 일이 끝났다? 결국 다 됐네. 한 건지, 된 건지를 명확히 구별하기 어렵지만, 일을 주어로 두면 어쨌든 '완료'상태에 도달했다. 사실, 해야 할 일은 일단 그냥 하는 게 낫다. 알지만, 이 아는 것을 하는 것으로 이어주는 것이 이번에는 '그냥, 절반만'이었다. 삶은 매 순간은 비슷비슷해서, '기타' 옵션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 순간마다에 절반이라도 변주를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말이 근사하게 들렸었는데, 그것도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냥, 절반만'이라도 하는 거야. 전체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절반이 온전한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