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칠순에서 엄마의 팔순까지, 다시 하와이

은퇴 후 첫 한 달 살기

by Quiet Miles

인생 2막 시작

나의 배우자가 조기 정년을 하겠다고 했던 건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결혼 초부터 그의 목표는 50대 중반에 파이어(FIRE)가 되는 것이었고,

그는 결국 그 계획을 현실로 만들었다.

계획대로 사는 몇 안 되는 '럭키가이'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의 퇴직을 어딘가 남의 일처럼 말하는 이유는,

내 커리어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고 함께 여행을 하고 있지만

은퇴를 하기 위해 멈추었다기보다

다시 도약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퇴직을 말하면서

나는 어딘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함께 퇴직했다 말할 수는 없으니.


그럼에도 남편이 퇴직을 한 2025년,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오던 계획을 꺼냈다.

여기저기 한 달 살기를 해보자고.


어딘가에 한 달 머물며

가족이나 친구들이 놀러 오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잠시 머물다 가도 좋고,

며칠을 묵어도 좋은 그런 공간을 빌려보자고.


겨울 내내 비가 내리는 시애틀에서

가까우면서도 따뜻한 곳으로 가고자 한 우리에게

첫 번째 한 달 살기 후보지는

자연스럽게 하와이가 되었다.


2009년 크리스마스 즈음

하와이는 한국에 있는 식구들과 이동거리로 중간 지점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기억이 있기도 하다.


친정아빠의 칠순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때 이미 지병이 있으셨기에

'팔순에는 여행이 힘드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남매들끼리 조심스럽게 나눴다.


그래서 잡은 해외여행 일정이 하와이였다.


바다를 좋아하시지만 거동이 힘드신 아빠를 위해 와이키키 바닷가 근처 콘도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는 하루 종일 바다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셨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던 우리 자매들은 애들 데리고 다니랴 부모님 케어하랴 여러모로 분주했지만,

나중에 두고두고 가족 여행은 그냥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도 이미 알고 계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여행이 대가족이 함께하는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적어도 그 추억을 가지고 가실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 이후로도 미국에 사는 내 가족은

몇 번 더 하와이를 찾았지만,

엄마 아빠 두 분을 모시고 오진 못했다.


2025년 3월

이번에는

엄마의 팔순을 핑계 삼아

다시 하와이에서 가족이 모이기로 했다. 남동생네는 이번에도 사정상 같이 하지 못했고,

울 세 자매들은 이미 성인이 돼서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쁜 3세들을 제외하고

친정엄마와 더 돈독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한 달 살 집을 고를 때의 기준은 단순했다.

언니들이 엄마를 모시고 와서 머물 열흘 동안 방과 침대가 충분할 것.

비행기 한 번이면 닿을 수 있는 오아후 섬에서 찾을 것.

와이키키처럼 관광객 많은 곳은 피하고,

조용하면서도 편의시설이 가까운 동네일 것.


그리고 가족이 지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이 비어 있으니 아무나 와서 쉬다 가시오."

그 한마디를 주변에 흘려도 좋은 곳일 것.


그렇게 고른 곳이

하와이카이 지역의 언덕 위 전망 좋은 에어비앤비였다.

IMG_7440.jpeg 한달 살기 숙소에서의 뷰

관광객이 아니라

그곳에서 정착하여 사는 것처럼

우리의 은퇴 처음 한 달 살기는

그렇게 하와이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