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한 달 살기 피날레

인생 두 번째 하프마라톤 완주

by Quiet Miles

하와이 살이의 좋은 핑계, 하프 마라톤


하와이 한 달 살기를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할지 결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4월 13일에 열릴 하팔루아 하와이 하프마라톤을 신청했다는 친구 말 한마디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 두 번째 하프마라톤이 2025년의 작심삼일...

아니, 작심세달이 되었다.


하프 날짜를 기준으로 일정을 뒤로 잡고, 3월 중순부터 하와이에서의 한 달 살이를 시작했다.


뛰지 않은 공백이 7년이나 됐지만, 다시 뛰어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첫 번째 하프 때와는 다른 여유가 조금은 있었다.

이번에는 장거리를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보다는

"다치지 않고 훈련도 완주도 잘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트레이닝 기간


나는 운동을 그리 잘하지도 않고, 무리하거나 다쳐가며 할 만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와이 하프를 준비하면서는 Runna 앱의 트레이닝 플랜을 따라갔다. 나는 '숙제 안 하면 불안해지는' 타입이라, Runna가 짜준 스케줄—가벼운 런, 롱런, 인터벌—을 못 지키면 학생처럼 불안해졌다.


그래도 시애틀에서의 훈련은 좋았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고,

해가 강하지 않아 오래 달려도 지치지 않는 그 감각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도 시애틀에서 뛰는 시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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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어산이 보이는 520 다리위 달리기, 그리고 지나가며 우리 동네 파크의 해질무렵


문제는 하와이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다리가 그렇게 무겁고, 몸이 그렇게 흐느적대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온도와 습도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아침형 인간도 아닌 내가, 더워지기 전에 뛰어야 하는 하와이의 아침.


몸은 무거웠지만,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이미 공기에는 바다의 향이 묻어 있었고,

따뜻한 온기와 습도가 온몸을 감싸듯 스며들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네의 알록달록한 토종닭들과 함께

조용한 파도 소리와 하늘을 가득 채운 새소리가 배경음이 되어

음악을 따로 듣거나 오디오북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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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런 날엔 더웠지만

여름빛 같은 아침 공기와 야자수 그림자,

멀리서 보이는 바다는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이런 풍경을 보며 달릴 수 있는 날이 내 인생에 또 올까?"

그런 생각이 스쳐 갈 때도 있었다.


그리고 하프가 다가올 즈음, 두려워하던 '손님'이 찾아왔다.

컨디션은 바닥이었고, 조절할 방법도 없었다.


결전의 그날


하와이 하프 코스는 와이키키 해변의 듀크 동상 앞에서 시작해

알라모아나를 돌고, 다시 와이키키를 지나 다이아몬드헤드를 한 바퀴 돌아

동물원 근처에 있는 결승전으로 돌아오는 경로다.

IMG_1311.jpeg Hapalua 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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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시작 전


레이스 날 새벽, 와이키키 해변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출발선을 서성이는 그 순간은

설렘과 긴장이 함께 떠올랐다.

친구와 잘 달려보자는 다짐도 함께 하고.

듀크 동상 뒤로 아직 채 밝지 않은 하늘이 보이고, 물결은 잔잔했다.


알라모아나를 지나 다시 돌아오는 구간에는 잠깐 이슬비가 내렸다.

먼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려는 순간이라

빛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마지막 10마일 근처에서 다이아몬드헤드의 오르막이 시작될 때

해는 이미 동쪽에서 완전히 올라 있었고,

나와 속도가 비슷한 대부분의 러너들은 그 오르막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로도 뜨거운 햇빛이 쏟아졌다. 오르막도 힘들었지만

생리통이 복통으로 오는 바람에

물도 거의 마시지 못한 몸으로 장거리를 달렸기에 거의 탈수 상태였던 것 같다.

자기 집 앞으로 나와 가든호스로 물을 뿌려주는 걸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수분 흡수의 전부였다.


순간순간 눈앞이 흐려졌지만 그동안 훈련한 시간이 아까워서 그만둘 수도 없었다.

완주는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마지막까지 달렸다.

결승점에 들어오는 나를 영상으로 찍고 있는 남편이 불렀다는데

전혀 듣지 못했다. 그저 빨리 끝내고 싶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기억만 뜨으렷다.


첫 번째 하프는 '두 시간 이상을 달리는 게 이렇게 지겨운 일인데, 도대체 풀마라톤은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두 번째 하프는... 뛰는 내내 배 아팠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


그럼에도,

중간에 화장실을 두세 번이나 갔음에도

나는 완주했다. 기록도 나쁘지 않았다.

발톱 두 개를 잃었지만 몸은 무사했다.

열꽃이 올랐는지, 하프 마라톤 후 2주 동안 두드러기가 올랐지만 그것도 시애틀로 돌아온 후 괜찮아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헉헉거리며 뛰던 그 순간들 속에

하와이의 바다, 공기, 소리, 풍경이 다시 떠올리면 또다시 좋은 추억이 되어 있다.

너무 힘들었지만,

또 너무 아름다웠다.

아마 오래 지나지 않아

또 그 바다 냄새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인데—
다시 하프마라톤을 뛰자고 유혹을 한다한들,
숙제하는 것 같은 훈련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서
일단 지금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5킬로 정도를 뛰며 즐거워하기로.
뛰는 것에서 오는 오롯한 행복함을 만끽해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