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수무책으로 아름다웠던
그라나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by Quiet Miles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화려한 알함브라 궁전.


아무리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봐도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다 담아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으로 담다가, 다시 사진을 찍어보다가를

계속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끝없이 반복되는 기하학과 아라베스크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슬람 왕조였던 나스르 왕조가 남긴 이 궁전은

'신만이 완벽하다'는 믿음 아래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집요함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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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교함에, 어쩐지 치가 떨릴 정도였다.


우연히 만들어진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수학적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숨이 막힐 듯 빈틈없는 방식으로 완성된 아름다움.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건

궁전 밖에서의 소소한 순간들이었다.


궁을 구경하고 멘탈이 조금 털렸을 즈음,

궁 안에 있는 파라도르에서 풀코스 점심을 먹고

천천히 시내로 내려오던 길도 너무 좋았고,


전망을 보겠다고 들어섰던 골목골목에서

담장 너머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의 일상도 좋았다.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


그라나다에는

스페인 여행 중 유일하게

두 번이나 찾아간 작은 치즈케이크 가게가 있었다.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중

그닥 만족스럽지 않다는 기분이 남아 있던 찰나,

곧 문을 닫는 시간이라고 나온 근처 치즈케이크 집을 발견했다.


일행 중 두 명이 잠시 나가 한 조각을 사 왔고,

그걸 숙소로 돌아와 한 입씩 나눠 먹었는데

그게 너무 맛있었던 거다.


결국 그라나다를 떠나는 날,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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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케이크 말고는 아무것도 팔지 않는 작은 가게였지만, 스탠드 위에는 케이크가 가득 쌓여 있었고 손님들은 끝없이 들어오고 있었던 그 집이 여전히 아른거린다.


그리고 어느 날은

광장 한쪽에 자리 잡은 길거리 음악가가

기타로 '알함브라의 추억'을 연주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앞에서

그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참을 서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은 여행 초반부터 고장 난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시계를 고쳐주는 가게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 발견한 시계 수선집.


시계를 고치는 동안

아저씨가 너무 잘생겼다며

솔로인 그녀들이 소녀들처럼 깔깔 웃던 순간까지.


계획하지 않았던 그 모든 장면들이

여행을 완성시켜 주었다.


셀프 빨래방에서 빨래가 완성되는 동안,

그 옆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시키면

타파스가 끝도 없이 나오는 경험을 한 것도

계획에는 없었다.


주문서도, 계산서도 없는데

서서 마시던 사람들이 마지막에 얼마나 마셨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던 서버.


그라나다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하루에 2만 5 천보씩은 걸었던 것 같다.


그 많은 걸음을 걸었는데도

이상하게 더 찡하게 남아 있는 건

'머무름'의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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