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금의 나를 보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공항 안내데스크에서 여러 국적의 승객들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맞이한다. 우리나라 대표 국제공항의 얼굴로서 다양한 언어로 승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들의 여행길을 안내하는 일을 한다. 동시에 7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감사합니다."
"Thank you."
"씨에씨에."
"아리가또고자이마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사인사를 들으며, 육아와 교대근무를 병행하는 고단하지만 단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한때 약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며 집 안에서 은둔 생활을 했던 시절이 있다. 그때 내 나이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사회생활을 막 시작해 돈 쓰는 즐거움도 느끼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나이, 누군가에겐 황금기였을 26~29살이었다.
당시 내 모습은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는 '히키코모리'들과 다를 게 없었다. 거의 유일한 생활공간이었던 6평 남짓의 내 방은 소위 말하는 '쓰레기집'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먹고 난 음료 캔, 과자봉지, 컵라면 용기, 다 쓴 휴지 등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이 쌓여만 갔다. 나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외고와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고, 상도 많이 받고 장학금도 탔던, 누구보다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치 늪에 빠진 것 같았다. 방치된 쓰레기들은 도저히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한 악취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쓰레기들과 한 무리가 된 듯 지냈다. 나 자신을 방치했듯 쓰레기들도 방치했다.
생활 패턴도 엉망이었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하루에 걷는 걸음수는 몇백 걸음에 불과했다. 밤낮이 바뀐 채로 생활하는 건 기본이었다. 새벽 4~5시에 잠들어서 가족 모두가 외출하고 없는 대낮이 되어서야 일어나곤 했고, 침대와 한 몸이 된 듯이 생활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것조차도 제대로 실감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긴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런 나를 본 엄마는 처음엔 나를 크게 꾸짖기도 하고, 붙잡고 때리며 울기도 하고, '빨리 지금이라도 작은 회사라도 들어가라'며 설득도 하셨다. 많은 말씀들을 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려오는 한마디가 있다.
아마 나처럼 긴 시간 은둔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많이들 공감할 것 같다. 집에서만 지내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러갔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치 4개월처럼 빠르게 흘러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정신과 마음은 25살,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어린 연령에 멈춰있었지만, 나의 몸과 얼굴은 영락없이 나이 든 티가 났다. 잘 씻지도 않고 거울도 잘 안 봤기에 그런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던 그땐 다시는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지 못할 것 같았고, 이 삶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방 밖을 벗어나 취업도 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건들과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편견과 무시가 섞인 말들과 시선에 상처받는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기에 못했던 걸 다 해보고 누려보자는 마음으로, 내 목숨 이상으로 지키고 싶은 '아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더욱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가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본다. 그 영상들에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의외로 성격이 외향적이거나, 반장까지 할 정도로 적극적이거나, 명문고 또는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도 히키코모리가 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학업, 인간관계, 업무 등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겪은 후, 완벽주의와 세심한 성향으로 인해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간 사람들. 나 역시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