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가장 필요했던 이야기

나처럼 무너졌던 누군가에게

by 조용한 생존자

히키코모리 시절, 내가 간절히 찾아다녔던 이야기가 있었다.


'실패로 큰 좌절을 겪고 인생 밑바닥까지 찍었다가 다시 일어난 사람의 이야기'.


실화든 소설이든 영화든, 뭐든 좋으니 어떻게든 그런 이야기를 찾아내서 힘을 얻고 싶었다. 어떻게든 죽지 않고 버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검색창에는 늘 비슷한 단어들이 남아있었다.


'실패했다가 성공하는 영화'

'히키코모리 탈출'

'30대 첫 취업'

'실패 후 다시 일어나기'


그 후 몇 년이 지나 학원강사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주말, 한 서점의 베스트셀러 책장에서 손원평 작가님의 <튜브>라는 소설을 발견했다. 첫 장을 넘기니, '작가의 말'에 소설 집필 계기가 아래와 같이 나와있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나는 (지금도 무엇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다가 전혀 예상치 않게 누군가가 아주 오래전에 포털 질문란에 남긴 짧은 글을 발견했다. 단 한번 본 글이었고 다시 찾을 수는 없었기에 정확한 원문은 아니지만 글의 내용은 간단했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성공하는 이야기를 추천해 달라는, 지금 자신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너무나 필요하다는 글이었다. 왜인지 간절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래전,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한 그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패한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다시 떠오르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자 아주 자연스럽게 김성곤 안드레아가 수평선 아래에서 두둥실 몸을 드러냈다.”

- <튜브> '작가의 말' 중에서 -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딱 그 사람과 같은 심정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소설을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하룻밤새 소설을 완독 했다. 소설 속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는 가족, 돈, 인간관계까지 완전히 모든 걸 잃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던 인물이다. 한강물에 뛰어들려던 순간, 다시 태어나기로 결심하고 자세 하나, 표정 하나부터 교정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많은 응원을 받고 재기에 성공한다. 그 후 결말은 너무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현실적이라 오히려 더 힘이 되었고,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소설 <튜브>의 에필로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신은 길을 가다 예쁜 꽃이 만발한 작은 꽃가게를 발견했다. 그 안에 들어가자 친절한 주인이 당신을 향해 미소 지으며 인사한다.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짓는 그녀가 불과 몇 년 전까지 세상이 두려워 방 밖으로도 나오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걸 당신은 짐작할 수 없다.

- <튜브> ‘에필로그: 어떤 삶’ 중에서 -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안내하며 웃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세상이 두려워 방 안에 숨어있던 사람이었다.

'추적 60분' 같은 다큐멘터리에 출연해도 될 정도로 심각했던 히키코모리 시절은, 누구한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과거이다. 그리고 줄곧 그 이야기를 숨겨왔다. 하지만 이렇게 내 경험을 글로 써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예전의 나처럼 '실패를 딛고 일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간절히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에게 '나도 그랬다'라고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을 그들에게 작은 부표처럼 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