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라가지만 좋아지지는 않는 자리에 대해
회사에서 “잘되고 있다”는 말은
종종 승진으로만 정의된다.
직급이 올라가고, 호칭이 달라지고,
회의 자리에서 더 앞쪽에 앉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한 낌새가 찾아온다. 출근길이 무거워지고, 예전보다 더 많은 보고서와 조율, 책임이 생겼는데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일과는 멀어졌다는 느낌.
칭찬 대신 책임이,
권한 대신 부담이 먼저 전달되는 자리.
승진은 했는데, 좋아졌다고 말하기가 애매한 자리.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본다.
업무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내던 사람이
팀장이 되면서,
더 이상 자신의 전문성을 사용할 시간이
없어지는 경우.
현장의 세밀한 문제를 해결하던 사람일수록
행정과 승인, 보고서 관리의 바다로 밀려난다.
“이제는 네가 결정해도 돼.”라는 말과 함께
책임은 커졌지만,
실제 의사결정은 여전히 위로 올라간다.
“위에서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고려해야 하니, 팀장은 관리자가 되었지만
리더가 되지는 못한 채
중간에서 계속 말들을 번역하는 역할만 남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위로 올라가고 있는 걸까.
성장은 방향이 아니라 내면의 확장에서 시작된다.
관계를 다루는 능력,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
상황을 해석하는 깊이.
이런 것들은 직급이 없어도 충분히 가능하다.
반대로 승진은 누군가의 결정, 조직의 구조, 타이밍에 따라 좌우된다.
그래서 승진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성장은 ‘길러지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자주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승진이 멈추면 뒤처진 것 같고,
남들보다 느리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몸은 이미 지쳐 있는데도,
마음은 더 위로 가야 한다고 채찍질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
지금의 일에서 내가 새롭게 이해하게 된 것은 무엇일까
더 단단해진 부분은 어디일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가
승진이 없는 해에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반대로 승진이 이어지는 해에도,
성장이 멈출 수 있다.
어쩌면 중요한 건 ‘얼마나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올라가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일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자리를 고르는 순간이 온다.
조금 덜 올라가더라도
내가 나로서 숨 쉴 수 있는 자리,
책임과 권한이 균형을 이루는 자리,
내 일의 의미를 다시 느낄 수 있는 자리.
승진이 삶의 목적이 되지 않을 때,
비로소 성장은 조용히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성장 위에서 이루어지는 승진은,
비로소 좋아질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책임만 늘고 권한은 그대로일 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