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오기 전, 신호는 이미 있었다

— 몸과 일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법

by 조직을 읽는 여자

번아웃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전에 신호는 이미 여러 번 울리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그 신호를 “그럴 수 있지”라는 말로 조용히 끄고 지나쳤을 뿐이다.


처음엔 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예전보다 조금 더 힘들어지고, 이유 없이 피곤했다. 주말에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 자잘한 통증들이 늘어났다.

병원에 가면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들 이렇게 일하니까.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몸보다 일이 먼저다.
정해진 일정, 빠질 수 없는 회의, 예측할 수 없는 민원과 감사,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지시들.


아프다는 말은 핑계처럼 느껴지고, 쉬겠다는 말은 책임감 없는 선택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몸이 보내는 신호는 늘 뒤로 밀린다.


잠을 줄이고, 식사를 대충 하고, 통증에는 진통제를 먹는다. 몸은 일에 맞춰 조정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정이 따라온다.


예전에는 별일 아니던 말에 예민해지고, 작은 요청에도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일의 의미가 흐릿해지고,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보다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때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좀 예민한가 보다.”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시기는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번아웃은 일을 못하게 되는 상태가 아니라,
일에 나를 쓰지 못하게 되는 상태에 가깝다.
머리는 움직이는데, 마음이 따라오지 않고
몸은 자리에 있는데, 에너지는 이미 고갈된 상태.
이쯤 되면 회복은 휴가 하루로 해결되지 않는다.


몸과 일의 균형을 다시 맞춘다는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얼마나 피곤한지 인정하는 것.
지금 이 업무가 나에게 어떤 부담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
그리고 가능한 범위에서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
공공기관에서는 특히,
모든 일을 ‘잘’ 하려는 태도가 번아웃을 앞당긴다.
완벽함 대신 지속 가능함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쉬는 법을 모른 채 오래 일하면,
몸이 대신 멈추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관리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책임이 아니라,
조금 더 나를 돌볼 시간일지도 모른다.


번아웃이 오기 전, 신호는 이미 있었다.
그 신호를 다시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일을 그만두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일을 오래 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지금도 몸은 말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다.



다음 글에서는 "조직과 나, 둘 다 잃지 않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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