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정 욕구가 일을 삼켜버릴 때
처음엔 그저 잘하고 싶었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맡은 일은 깔끔하게 끝내고 싶었다.
회의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고,
“저 사람은 믿고 맡길 수 있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듣고 싶었다.
그 마음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 마음이 점점 일을 넘어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 되었을 때였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잘하는 사람’은 비교적 빨리 구분된다.
기한을 어기지 않는 사람,
지시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
윗선의 의도를 빠르게 읽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일은 자연스럽게 몰린다.
추가 설명이 필요 없고,
중간 점검을 하지 않아도 되고,
결과가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게 인정처럼 느껴진다.
나를 찾는 전화가 늘고,
회의에 불려가는 횟수가 늘고,
보고서의 마지막 정리는 늘 내 몫이 된다.
‘내가 필요하구나.’
그 생각이 은근한 만족으로 남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이건 네가 제일 잘하잖아.”
“이번만 네가 좀 봐줘.”
“어차피 네가 하면 빨리 끝나잖아.”
그 말들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역할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일의 양은 늘어나는데
책임의 범위는 명확해지지 않고,
기대치는 올라가는데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쉽게 멈추지 못한다.
혹시 내가 빠지면 일이 엉킬까 봐,
괜히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무너질까 봐.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나를 일 속으로 더 깊이 밀어 넣는다.
이쯤 되면 일의 기준이 바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가 아니라
‘이 정도는 해야 인정받는다’가 된다.
보고서는 한 번 더 고치고,
메일은 괜히 더 정중해지고,
회의 발언은 더 신중해진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닌데도
항상 긴장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점부터 일은 잘 끝나도
마음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위험한 건 인정 욕구 자체가 아니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
문제는 그 욕구가 나를 지키는 기준보다
앞서기 시작할 때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인가’보다
‘이걸 안 하면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순간.
그때부터 일은 성과가 아니라 증명이 된다.
능력이 아니라 태도로 평가받는 느낌이 든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관리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나를 소진시킨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인정받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인정을 얻기 위해 나를 계속 쓰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 것,
그게 일을 오래 하기 위한
첫 번째 마음 관리일지도 모른다.
다음 글에서는 일을 증명하려는 사람의 피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