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쓰라는 기사는 안 쓰고
남기자들의 단체 카톡방 사건이 알려졌을 때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 하나의 방에서만 그런 일이 있었을까. 내가 아는 여기자는 사내 연애를 했을 뿐인데 입에 담기도 저급한 표현의 루머가 찌라시로 돌아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는 범인을 잡을 생각을 하지도 않고 초연하게 말했다. “지나가겠죠. 다른 걸로 덮이겠죠.” 여기자들이 소문을 대하는 방식이 이것이다. 포기.
언론계는 폭로가 일어날 수조차 없는 공간이다.
기자 사회에서 성희롱, 성추행, 강간의 피해자들은 절대 다수가 여성이며 그 여성들은 내가 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이 대부분의 업계인들에게는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먹잇감이라는 걸 잘 안다. 나부터도 ‘[받은 글] 모 회사 여기자가 부장에게 성희롱 당해서 퇴사. 얼굴은 연예인 OOO를 닮았고 남친 있음. 사진 첨부’ 이런 글을 공유받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기자들은 멀티플레잉에 능하다. “오 예쁘네”, “그 정도는 아닌 듯” 이라고 무심하게 카카오톡 새 글이 올라와도 나는 감히 그러지 말라고 하지 못 했다. 본인을 2차 가해자 취급(사실인데도) 한다고 펄펄 뛰며 나를 따돌릴까봐 앞으로 업계 정보를 받지 못할까봐 비겁하게도 그랬다.
기자들에게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은 생명줄이다. 기자라면 회사 동료들과의 채팅방 외에 업무 관련 단체방이 적어도 5~7개는 된다. 특히 막내기자들은 모든 현장을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타사 기자들끼리 방을 만들어 일정이나 정보를 나누고 불가피한 경우 자신이 참석하지 못한 현장에서 얘기된 내용을 공유받기도 한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이 채팅방은 ‘받은 글’의 홍수로 전락한다. 기자가 아닌 사람들도 심심찮게 전달받는 이른바 찌라시. [받은 글] 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본인의 가담을 회피하는 이런 가십성 글은 기자와 기업 홍보팀 직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된다. 심지어 일부 찌라시는 기자가 작성하기도 한다.
많은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많다. 이들 중 일부는 새 소식이라면 무조건 얻고 싶어하며 말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성격이 아니면 기자 일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기자들은 1~3개월 동안 잠복하며 비밀을 파헤치지 않는다. 매일 속보를 찍어내느라는 압박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대부분의 일간지와 방송사 기자는 전날 저녁, 내일 쓸 기사를 부장에게 보고하며(이것을 발제라고 한다) 이게 통과되면 다음날 회사 마감시간에 맞춰 이른 오후에 기사를 송고한다. 좋게 보면 매일 매일의 이슈를 따라가는 것이고, 거칠게 말하면 하루살이 얕은 취재, 매일매일 돌려막기의 연장이다. 그래서 도저히 쓸게 없는 기자들은 겨우 한 꼭지를 막은 뒤에 ‘한 끼 해결했다’고 한숨을 몰아쉰다. 그럼 어떻게 매일매일 기삿거리를 찾아낼까? 취재원과의 친분이다.
한 기자가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영역은 칼같이 정해져있다. 누구는 유통분야에서도 백화점과 대형 마트 기사만 쓴다, 누구는 문화면에서도 새책과 출판계 동향만 쓴다는 식이다. 이를 출입처라고 하며 다른 기자의 출입처를 침범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새 출입처에 배정된 기자는 일단 해당 회사의 홍보팀 직원이나, 정부부처의 경우 그 관계자들을 만난다. 조금 더 발로 뛰는 기자라면 노조 관계자나 일반 직원과도 접촉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직급이 높지 않은 직원들은 애초에 친구사이가 아닌 이상 기자에게 회사 비밀을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신변이 걱정돼서다. 그래서 기자들은 언론 대응이 주업무인 홍보팀 직원과 주로 소통하며, 그 회사에 아픈 기사를 많이 쓰다보면 고위급 임원이 만남을 청해오기도 한다. 점심식사도 저녁식사도 취재원과 만나서 먹는 업무의 일환이다.
시간이 금인 사람들끼리 빠른 시간에 친해져서 서로 원하는걸 뽑아먹는 방법이 뭘까. 한국에서 그건 술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낮부터 소맥 폭탄주를 얼큰하게 마시는 일이 잦다. 학연, 지연, 군대 몇 사단까지 들이대며 열심히 공통점을 찾고 친해져야 그들도 긴장을 풀고 뭔가를 털어놓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자를 보험설계사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이 과정에서 긴장감을 녹이는 용도로 연예계 가십 등 찌라시에 나오는 정보들이 많이 유통된다. 일부 홍보팀 직원은 기자들에게 새 찌라시를 받을때마다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윗분이 가십 읽는걸 좋아해서 아침 보고 때마다 새 찌라시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찌라시의 경우 윗분들을 위해 특별히 작성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일부 기자들은 천박한 내용의 찌라시라도 일단 정보는 유용하다는 잘못된 마음을 먹게 된다.
애석하게도 기자들은 취재력과 정보전파 능력을 기사 작성에만 쓰지 않는다. 이건 안그래도 차별에 시달리는 여기자들을 공격하는 데에도 쓰인다. 찌라시의 대상은 이제 정치인, 재계 거물의 사생활이나 연예인의 스캔들을 벗어난 지 오래다. 새로 입사한 모 신문사의 신입이 어떻다더라, 어느 기자와 어느 기자가 사귄다더라, 어느 홍보팀 팀장과 직원이 불륜이라더라 등의 찌라시를 받아보지 않은 기자는 대한민국에 단 한명도 없다. 이런 종류의 찌라시에서 신상이 털리고 사진이 공유되는 것은 주로 여자 쪽이다.
가장 핫한 얘기가 성과 관련된 것이다. 연인관계, 불륜, 방탕한 성생활, 심지어 성폭력 사건까지 찌라시의 갈래에서는 성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기자라면 누구나 어떤 회사에 무슨 부장이 성추문으로 찌라시를 장식했는지 안다. 실제로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사 후 신생 신문사 부장으로 일자리를 옮긴 사람도 셀 수 없이 많다. 어떤 사람은 후에 또 성희롱으로 퇴사를 했는데, 새로운 신문사로 옮겼다고 하니 대한민국에서 성폭력 가해는 훈장인가 싶다.
노래방에서 부장이 억지로 내 손을 잡고 깍지를 꼈고, 자꾸 자리를 비우는 나를 노래방 복도로 불러내서 열심히 좀 하자며 강제로 나를 껴안았을 때 나는 수치심과 불쾌함을 느꼈다. 다음 날 편집국장에게 이를 보고했지만 “옛날 선생님 같은 스타일이라서 그러니 김 기자가 이해하라”고 했다. 이 무슨 교사들이 들고 일어날 소리인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업계 성폭력에 대한 폭로는 미투 운동보다 적어도 1년은 빨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에 ‘오타쿠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내가 목격한 최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코스튬플레이 등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 남성회원들이 성폭력을 심심치 않게 저질러왔다는 폭로가 줄을 이었다. 이후 예술계, 의료계, 출판계 등 각계 여성 종사자들이 앞다퉈 폭로에 나섰다. 문학계 내 성폭력이 대표적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문학계 내부의 자정 움직임은커녕 가해자로 지목받은 남성 문인들은 명예훼손으로 입막음에 나섰다. 시를 가르쳐주겠노라고 여성팬에게 새벽마다 개인적 메시지를 보내 만나자, 함께 있고 싶다, 와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등 그들의 수법은 한결같다. 시나 소설을 쓴다는 그들의 직업을 생각하면 더욱 추접스럽게 느껴진다. 실망스러운 것은 문학계 원로들의 무관심이다. 나는 아껴 읽던 한 원로 평론가의 에세이집을 버렸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아름다운 영혼이라는 말은 헛되게 울린다. 적어도 그 아름다운 세상, 사람냄새나는 세상에 여성은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다.
기자 역시 글밥을 먹는 직업이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얘기는 더욱 허황되게 허공으로 흩어진다. 찌라시 전달의 주축. 그게 대한민국 기자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