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되는 허들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은 철저한 계급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첫 오디션 결과에 따라 참가자들은 A~F등급으로 나뉘어 트레이닝을 받는다. 전원이 참여하는 라이브 무대에서 A등급은 가장 많은 파트를 받고 무대 중앙에 서지만 F등급은 무대에 오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아 바닥에서 춤을 춘다. 실력에 따른 결과라고 보기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이 무대를 통해 눈도장을 찍어야 시청자 투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데 F등급은 한없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첫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다음 시험에 유리한 기반이 마련된다. 첫 번째 시험에서 실패하면 격차는 점점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만약 이 시험이 공정하지 않다면 더욱 문제다.
시험이란 아무리 세심하게 디자인해도 만인에게 공정하기 어렵다. KBS가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에 '왕십리', '종로' 등 지명을 로마자로 바르게 표기한 것을 고르라는 문제가 왕왕 나온다. 전국 단위로 실시되는 이 시험에서 지역 거주자들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공부를 안 했어도 요행히 왕십리에 사는 까닭에 로마자 표기가 익숙해서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나올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시험 성적이 KBS 직원을 비롯해 여러 공기업과 사기업의 입사시험에서 활용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촘촘한 설계가 필요한 지점이다.
문제는 한 시험에서 얻은 좋은 결과가 대물림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일간지가 이른바 'SKY'라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신입생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버지가 4년제 대졸 이상인 경우가 77.5%, 어머니가 4년제 대졸 이상은 71.5%에 달했다. 부모 양쪽이 모두 4년제 대졸 이상인 경우는 61%이며 모두 고졸 이하인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대졸자 커플의 자녀가 '스카이'에 진학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고졸 커플이나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 부부의 자녀가 '스카이'에 진학할 확률은 상당히 떨어진다는 점을 반증한다.
시험은 말 그대로 배운 것을 평가하는 단계여야하는데 권력을 부여하고 이를 대물림까지 하게 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단 하루의 수능시험으로 운이 갈리지 않도록 수시 확대, 기업의 블라인드 채용 등 방편이 도입되고는 있지만 이같은 수정 사항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얻으면 다음 단계의 평가로 넘어갈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개인간의 격차가 영원히 벌어지는 부등호 사회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제로 베이스, 진정한 의미의 ‘시험 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