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마시는 ‘대리’ 사이다 현상
친구가 한 유튜브 채널에 푹 빠졌다. ‘대신 말해드립니다’를 콘셉트로 남성 유튜브가 다양한 갈등 사연을 받아서 해결해주는 포맷이다.
너무 자랑이 심해서 손절하고 싶은 친구, 알고보니 바람을 피우고 있던 애인, 돈을 갚지 않는 친구 등의 사연이 나온다.
유튜버는 할말을 대본처럼 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의뢰인의 카카오톡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넘겨받아서 본인인척 상대와 싸워준다.
이 사람의 화려한 언변으로 사이다 서사를 완성하는게 구독자들의 관심 포인트다.
온라인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이다’ 서사는 이미 오래된 유행이다.
갈등을 일침으로 통쾌하게 해결하고 싶은 욕망, 잘못한 이를 혼쭐내주고 싶다는 사적 제재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채널은 한발 더 나아가서 ‘대리’ 통쾌함을 제공한다.
의문이 생긴다. 본인이 생각하고 그때그때 대응해서 말싸움이든 설득이든 일갈이든 할 생각을 않고
이를 외주준다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몇천, 몇만명의 구독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 사람을 망신주고 싶다는 생각은 덤이다.
사적인 다툼을 공적 영역으로 끌고오는 ‘공론화’도 이와 결이 닿아있다.
거칠게 말하면 “얘를 같이 욕해달라”는 행위다.
과거에는 친구와의 상담, 라디오 사연 등을 통해서 해결책을 도모해 본인이 직접 상황을 타개하려했던 사람들이 점점
여론의 힘, 청와대 청원의 화력, 유튜버가 대신 로그인해서 말싸움해주기까지 바라고 있다.
사실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을 사이다로 끝내는건 불가능하다.
때로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넘어가기도 하고 ‘잘못걸렸구나’하고 피하는게 상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다수를 등에 업고 남의 언변을 빌려 어떻게든 이기고싶은 심리가 이런 유튜브 채널을 존속하게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