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더 똑똑해질수록, 나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4년 간 데이터를 분석했다.
경우의 수를 나누고 리스크를 분석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계산에는 내가 빠져있었다.
4년 동안 게임 회사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했다. 유저의 행동을 탐색하고, 원인을 찾고, 지표를 설계해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기 위한 인사이트를 발견해 내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렇게 데이터 분석가로서 전문성이 쌓이고 있었고, 커리어의 방향성도 비교적 명확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되지 않는 불안감이 있었다. 회사 생활에 큰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야근이 없지는 않았지만 일에 대한 성취감 역시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늘 어려웠다.
그리고 4년 차에 직면하게 된 진짜 문제는 불만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IT 업계에 있다 보니, 과거부터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라는 뉴스 기사를 보다 먼저 접해왔고, 당시에는 크게 체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AI가 빠르게 실무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내가 하고 있던 일들 중 상당수가 자동화되거나 보조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현실을 피부로 체감하게 되었다.
회사 안 여기저기서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져갔지만, 그와 동시에 내게는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나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데이터를 해석하는 능력, 가설을 세우는 사고력,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대시보드를 만드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AI를 활용해서' + '빠르게' 분석을 하고 대시보드를 만드는 역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의 방향성, 그리고 이에 따라 숨 가쁘게 움직이는 조직을 보면서 시간이 갈수록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내 모습과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상황에 대한 가능성과 리스크를 따져가며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커리어에 대해서는 '이 선택이 몇 년 뒤에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제대로 던져본 적이 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AI는 너무 빠르게 발전했고, 그 속도는 개인의 학습 곡선을 쉽게 앞질렀다.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자리는 사실 대체되지 않았을 뿐인 자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안정'과 '안전'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고 하면 종종 용기가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내 선택은 용기보다는 불가피함에 가까웠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늘어지는 내 학습 곡선을 바라보며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리스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영역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라면 나 역시도 해보지 않은 영역을 비교적 쉽게 따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에 맞추어 AI 도구에 적응하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그 도구를 직접 사용해 내 것을 만들어보고, 실패해 보고, 책임지는 쪽이 되고 싶었다. 주어지는 것을 분석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고, 직접 운영하고 그 결과를 다시 분석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AI 노코드 툴을 활용한 1인 서비스 개발이라는 작은 실험이었다.
이 선택의 결과는 몇 년뒤 뒤집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안정적인 선택이라는 막연한 자기 위안 속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는 것.
이 글은 성공담이 아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한 데이터 분석가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미뤄두었던 질문들을 이제서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한 기록이다. 앞으로 내가 겪게 될 불안과 시행착오 그리고 작은 성취들을 가능한 한 솔직하게 남기려고 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기록이 조금의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