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존재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유학원이란 곳은 본디 부잣집 아이들이 모이는 공간이고, 가끔 압도적으로 잘 사는 학생도 온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당연히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건 결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질투나 열등감 같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많이 어린 만큼 한참 미숙하기 때문에 그들이 나보다 낫다고 느끼거나 질투한 적은 없었다. 한 학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학생은 주변 모두를 엑스트라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고, 그저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특별함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 빛은 비단 그 학생이 잘생겨서가 아니라 그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늘 눈에 따뜻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고, 말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빠지지 않았으며 몸에는 자연스러운 매너가 배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겸손하게 말할 줄 알았고 자신의 부족함을 꺼내 이야기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감탄을 자아내는 인물이었다.
그는 어떻게 그런 내면을 갖게 된 걸까? 내 좁은 식견으로 말하자면 그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럴만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인격인 것이다. 그는 인품과 경제적 풍족함을 두루 갖춘 부모에게서 태어나, 예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멋진 경험을 많이 하며,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성장한 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그 학생에 대한 질투가 솟아남을 억누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한층 더 나를 괴롭게 했다. 매일 만나는 그 학생과 짐짓 즐겁게 대화하고 수업한 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지친 얼굴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 학생의 풍부하고 다양한 미소에는 늘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고, 나로 하여금 초라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도 바로 그 미소였다. 그 아이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가장 원했던 나의 모습은 바로 그런 거였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고 타인에게는 호의적이며 상냥한 데다 쉽게 미소를 짓는 그런 사람.
그러니까 나는 너무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질투를 느끼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을 보면 부럽지만 질투하는 감정까지는 들지 않고, 또 어떤 사람을 보면 질투가 난다. 아마 그 차이는 내가 그 존재처럼 되고 싶은지의 여부인 듯하다. 아무리 남이 좋아 보여도, 나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드는 게 아니라면 결코 질투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을 테다. 예를 들면 나는 유명 스포츠 선수를 보고 질투하지 않는다.
그런 학생을 더 이상 만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보다 올바른 해결법은 나 자신이 조금씩 변하는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되면 등장인물로나 써먹어야 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