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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이 러너 Aug 23. 2019

결국 평균으로 나아간다

달리기 찬가#6. 달리기도, 당신의 일도, 삶도

글 쓰는 일을 하지만, 퇴근 후엔 몸 쓰는 일을 즐기는 직장인. 대학생이던 2012년 무렵부터 취미로 러닝을 즐기고 있다. 이런저런 운동에 손을 댔지만, 결국 러닝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뛸 때마다 잡스런 생각을 하다 보니 러닝을 하며 가장 튼튼해진 건 마음. 달리며 얻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공유한다.


달리는 이유야 제각각이지만, 러닝도 결국엔 기록의 스포츠다. 취미생활로 러닝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달린 거리와 걸린 시간을 기록한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달리는 이들은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기록하기도 한다.


러닝은 달린 거리를 얼마 만에 주파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달린 거리로 다시 시간을 나눠 '페이스'(pace)를 따진다. 60분 만에 10km를 주파했다고 하면 '시속 10km/h'로 계산하는 대신 '킬로미터 당 6분'으로 계산한다. 이렇게 나온 값이 '평균 페이스'가 된다. 이 값이 내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물론 달리는 동안 페이스는 끊임없이 변한다. 노면 상태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날 내 달리기의 결과를, 훈련과 노력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평균 페이스다. 러너들은 이 평균을 줄이기 위해서, 혹은 평균을 유지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거리가 길어질수록, 페이스는 굳어간다.


달리기 앱은 보통 1km마다 페이스를 '정산'한다. 그래서 첫 1km의 페이스는 내 평균 페이스와 일치한다. 첫 1km를 5분 페이스로 뛰었다면, 그날 내 달리기의 평균 페이스는 5분이다. 평균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싶으면 조금만 빨리 달리면 되고, 늦추고 싶다면 조금만 천천히 달리면 된다. 달린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내 행동 하나하나가 즉각 평균에 반영된다.


하지만 달리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평균 페이스를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 5km만 넘어가도 조금 빨리 달린다고 페이스가 쑥 올라가지 않는다. 반대로 조금 천천히 뛴다고 페이스가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달린 거리가 10km, 20km를 넘어가다 보면 순간의 노력(스프린트 등)이 평균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때가 온다. 이때 오버페이스를 하면 힘은 힘대로 들고 내가 목표한 페이스에는 도달하지도 못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초반에 있는 힘껏 뛰어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전략도 썩 효과적이지는 않다. 각자 체력엔 한계가 있다. 거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페이스가 떨어지게 된다. 장거리 주행일수록 이런 오버페이스는 더 치명적이다. 최종적으로 평소 자신의 페이스보다도 더 못한 결과를 받아 들 가능성도 높다.


결국 멘털과 전략의 싸움이다. 주변의 속도에는 흔들리지 않고, 달려야 할 거리를 계산하며 달리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평균 페이스를 정확히 유지하거나,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시작해 조금씩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는 것이 방법이다.


내 삶도, 결국 평균으로 움직인다.


일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느 상황에서든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시작할 때에는 의욕 충만, 에너지를 쏟아붓기 쉽다. 그만큼 탈진하기도 쉽다. 오버페이스로 달리다가는 어느새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걸어야 한다. 시작부터 보여주는 눈부신 전력질주 뒤에 따라오는 후폭풍이 더 크다. 이렇게 들쭉날쭉 달리다 보면 평소보다도 더 못한 결과를 받아 들기도 한다.


삶이라고 다를까. 인생은 마라톤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거리가 길어질수록 페이스가 쉽게 변하지 않듯, 삶의 궤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성취이든, 방향이든 삶의 페이스로 치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물론, 몇 번의 '스프린트'로 궤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당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순간적인 '오버 페이스'를 위해선 남은 체력을 계산하는 치밀함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오버페이스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 페이스를 바라보는 담담한 마음과 침착함이 필요한 것 아닐까. 처음에 좀 느리면 어떤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까지 차근차근 끌어올리는 러닝이 눈부신 스프린트보다 나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는 평균에서 위안을 찾기도 한다. 달리다 보면 평균보다 빠른 순간도 있고, 느린 순간이 온다. 그래도 결국 나의 실력은 평균값이 말해준다. 삶도 마찬가지다. 눈부신 순간도, 우울한 순간도 있지만 결국 내 삶을 움직이는 건 평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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