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쿼카의 하루 Nov 13. 2024

미래란 꿈꾸는 자의 것..일까

3년 동안 다닌 직장을 퇴사합니다

  부쩍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이다. 사직서를 작성하고 나서 퇴사가 확정된 지금까지 이어진 결심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도대체 그렇게 무모한 일을 왜 했냐고 다시 묻는다면,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나는 10월 말 퇴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사직서를 썼다. 퇴사 날을 앞당기기 까지 하고, 2주간 병가를 내서 생각할 여유를 가졌다. 그 기간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알리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퇴사를 결심했다고 주변에 말하니 들었던 반응은 한결같았다. 나의 입에서 퇴사했다고, 짧게 말을 끝마치자마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결사 반대할 기세로 다른 자리로 불러내 뜯어 말리던 지인도 있었다. 그런 결정을 상의도 없이 한다고 뭐라고 하시던 부모님, 욕할 기세로 밀어 붙이며 나의 생각을 바꾸려던 한 가족. 대부분 나와 가까운 지인일수록, 내 직장을 부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일수록 반대하는 정도는 더욱 거셌다.


  예전부터 많이 고민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거센 반대는 어느 정도 많이 예상했던 상황이고, 그 상황에 막상 처하자, 꽤 아무렇지 않은 듯 견딜 수는 있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고,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하면서 역시 책임을 지는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누군가가 전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쫓아가서 뜯어말려야 할 의무도, 권리도 없다. 나름 견딜 만한 상황이었고, 주도적으로 살아가야할 사람에게는 마땅히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의 퇴사를 반대하고 말리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묵인하는 상황이 되고, 그들도 마치 나처럼 나의 미래가 내게 천천히 다가오기를 지켜보며 말없이 응원할 뿐인 처지가 되었다. 미래라는 건 아직 오지 않아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모두가 쳐다보고 있는 영화관에서 맞이하게 될 영화의 다음 내용처럼. 그렇게 할 것 없이 앉아서 앞을 쳐다보고만 있어야 한다. 내 미래를 걱정하던 사람들, 네 결정을 존중한다고 작게나마 멋지다 말했던 사람들, 그 말들을 그저 들으며 적당히 얼버무리던 나 역시도 관객석에 하나 둘씩 들어와 줄지어 앉아있을 수 밖에 없다. 미래란 그러한 종류의 것이니까. 아무리 준비하고 노력하고 통제한다고 해도, 밝혀지지 않은 세상과 나에 대한 진실들로 인하여, 오늘도 내일도 크고 작은 방황을 하며 살아갈 테니까.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건 그 사실 하나 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지 않은 날을 그저 마음 졸이며 바라보고 있는 내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 미래란 <우주전쟁>에 나오는 커다란 괴물을 닮았지만, 그 괴물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당황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와, 베일에 감추어진 나와 세상에 대한 진실을 어떻게든 파헤치려고 노력하는 집념이 아닐까. 미래라는 건 저 멀리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건물들을 파괴하며 기세 좋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우주괴물일 수도 있지만, 무지개나 혜성, 유성우나 개기 일식의 금환식 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려는 천문학자처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처럼, 미래에 있을 지도 모르는 기회들을 붙잡을 때까지 노력하는 내가 되겠다.

작가의 이전글 한 편의 소설을 연재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