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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10. 2024

나와 장 그리고 시험

장 회고록 (1)

  2019년 11월 어느 날.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고, 화면 안에내 친구 '장'의 이름이 적혀있다. 전화를 받아보니 모처럼 반가운 목소리의 장이 나에게 인사하고 말을 건넨다.


  "내가 진짜 좋은 제안 하나 할 건데 들어봐"


  설레발을 치는 데에도 이유가 있겠지 싶어, 나는 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장의 제안은 다른 게 아니었다. 우리가 취업을 준비하기에 딱 적당한 나이니까 이제부터 같이 도서관에 출근해서 공부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꽤 좋은 생각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공부는 원래 혼자하는 것이지만, 같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고등학교 동창인 장과 고등학생 시절 함께 다니며 학교 수업을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 때가 벌써 7년이 다 되어가는데, 다시 그 시절처럼 공부를 하게 되다니 반갑고 무척 기대가 됐다. "내가 말한 거 한번 생각해보고 다시 전화줘" 장은 그래도 나의 확답을 듣고 싶었기에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나는 장의 제안에 무척 고마웠고, 알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내가 공부를 하려는 시험은 9급 공무원 시험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도 공무원 시험에 조금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가 준비해야 하는 시험은 공시가 되었다. 사실 그때는 공무원이 어떤 직업이고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잘 몰랐다. 다만 시험 하나만 열심히 준비하면 취업이 되는 문제였기에, 공시라는 시험이 마음에 들고, 자신이 있었다. 공시에서 유명한 '일타 강사님'의 강의를 들어봤는데, 집중도 잘되고 재미있었다. 수능을 준비할 때 그 치열했던 노력이 떠오르기도 하고, 준비하는 방법이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공부를 시작할 때 만큼은 다만 간절함이나 절박감보다는 흥미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설렘과 같은 긍정적인 기분을 많이 느꼈다.


  내 친구 장의 상황도 비슷했고 똑같은 마음이었다. 장도 역시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조금씩 시간날 때마다 공부하던 보험 시험의 과목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전문직 시험으로써 '손해사정사'라는 이름의 자격증 시험이다. 의학, 자동차법, 보험법, 산업재해법 등 전문적인 내용들을 준비하는 쉽지 않은 자격증이었다. 1차는 객관식이고 2차는 서술형인데, 서술형 시험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렵고, 합격자 평균이 50점이 채 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어렵기도 어렵지만, 자격증을 따게 된다면, 취업이 보장된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공시와 목적이나 성격이 비슷했다. 장도 나와 공부를 같이 갈 때는 여느 때와 같이 항상 심각한 표정이 아니었다. 머리는 좀 아플지는 몰라도 다만 보람있고 성취감 드는 무언가를 하러 가는 느낌이었다.


  장은 자주 공부하러 오는 시간이 늦기도 했지만, 곧잘 출석했다. 시험날까지 장은 꿋꿋이 공부하러 가는 자리를 지켰다.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1차를 일찌감치 통과하고 2020년 여름, 대망의 2차 시험을 보러 갈 때까지 장의 하루는 묵묵히 흘러갔다. 장은 시험을 치르기 하루 전 담배를 피우며 정말 긴장된다고 말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하얀 담배 연기를 를 후 뱉으며, 장은 정말 미치겠네, 하며 오늘 빨리 가서 산재를 한 번 더 보고, 자동차는 집에 가서 보고, 그리고 집에 가서 일찍 자야겠다고 말했다. 남은 24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 치열하게 계획을 세우던 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담배를 땅에 비벼 끄던 그의 모습에서 쓸쓸함 조금과 긴장감을 알아챌 있었다.


  결국 그는 그의 쓸쓸함을 달래줄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시험의 절박한 긴장감은 이제 없지만 그는 여전히 홀로이고, 시험에 합격한 합격생이 아니다. 그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붙잡고 위로하기 위한 시간보다는 공부에 힘써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 이후로도 6개월 간의 노력 끝에 9급 공시 합격이라는 가슴 뛰는 결과를 얻었다. 나와 장은 같은 곳, 같은 시간에 출발했지만 도착점이 달랐다. 정말 아쉬운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와 함께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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