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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08. 2024

스무살의 추억 下

유일한 답을 찾다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짐을 대신 져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현실이었다. 스무 살이 조금 지난 시기부터 알게 되었지만, 그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무렵엔 스무 살도 아마 늦은 나이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사람들은 사춘기 정도부터는 저마다 인생이 어느정도는 혼자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각자가 짊어진 외로움과 고독의 크기에 스스로 익숙해져야 하고, 마음의 근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수치심을 경험할 것이고, 타인을 두려워하고, 사회에 대한 공포심이 생겨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수치심의 바다가 자신의 발을 덮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낄 것이다. 또한 물살에 휩쓸려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마음의 저체온증에 걸려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느낄지도 모른다. 수치심에 빠져 죽는 경우는...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런 경우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기에 수치심의 물살이 거세게 닥쳐와서 '망상'이라는 섬에 도착한 내가 오히려 감사해야 할는지 모른다. 수치심은 여러 방식으로 사람을 위기에 몰아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상'은 내가 표류하다가 도착하게 될 것이라 예상한 곳도 아니고, 그나마 덜 수치스럽고, 더 명예로운 곳도 아니다. 신비롭고, 은밀하고, 소름 끼칠 만큼 이상하고, 암울한 추억이 깃든 곳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곳에 도착해서 갇혀 표류하게 되었을 때만큼 내가 내 인생을 혐오하고, 깊은 회한을 느끼는 때는 없었고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도 어느정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도 모두 이전의 과정들이 쌓여서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앞서 계속 말했던 것처럼 '수치'의 파도에 떠밀려 온 것이다.


  여전히 고독과 외로움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마음의 근력은 아직 덜 성장해서 미숙한 상태이고, 여기저기 부딪히고 상처 난 곳이 아물지 않는다. 그렇게 스무 살의 하루들이 연장된 것처럼 세월이 흘러갔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인 것 같고, 짊어진 짐은 무겁기만 한데, 닥쳐온 인생의 고난들에 스스로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병실에 갇혀 지내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나에게 위기감을 던져준다. 이렇게 살다간, 다시 표류하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걱정은 현실이 되어 나를 가로막고,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웠던 '망상'섬에 다시 떠밀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깨에 짊어진 외로움과 고독을 직시하였을 때, 나는 망상섬을 빠져나와 병실로, 다시 병실에서 집으로 돌아가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 과정은 나의 고독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가혹한 훈련소와도 같았다. 그 훈련소의 피도 눈물도 없는 조교는 다름 아닌 수치심이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십자가가 위에 세워진 건물 앞에 서게 됐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더 큰 개념이라고들 말하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건물이었다. 그 당시에는 순전히 건물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서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읽을 때 나는 내 안의 수치심의 파도가 잠잠해지고, 내 어깨 위의 짐이 햇볕에 말라서 뽀송뽀송해진 솜뭉치처럼 가벼워지고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짐이 너무 무거워져서 누군가에게 내려놓는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수치심이 썰물처럼 빠져버렸다고는 말을 못 하지만) 거짓말같이 물의 높이가 무릎 정도에서 더 이상 불어나지 않았다. 고독이라는 짐은 내 어깨를 시큰하게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어떠한 것도 짊어질 수 없도록 했는데, 마침내 내 어깨에 여유 공간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깨에 짊어질 수 있는 것들을 이제야 바라본다. 내 인생길에 동행하고 싶은 것들, 가지고 가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내 어깨 위에 올려놓아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들을 보살피고, 챙기고, 사랑이 담긴 말을 건네는 것.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냈느냐고 안부를 묻고, 기꺼이 좋은 하루를 보내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오늘도 나 자신을 내려놓는다. 그래야지만, 나 스스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게 될 것이며, 그 빛이 어디로부터 온 것임을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받은 것이 다름 아닌 빛이고, 사랑이었던 것처럼, 나도 모두에게 사랑이 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꺼이 짊어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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