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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Mar 04. 2024

침묵은 금

과묵한 성격의 장점에 대하여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말이 적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가 낮고 말투도 느리다. 말투가 워낙 느려서 내 입장에서는 빠르게 말한 건데 상대방이 빠짐없이 모두 이해해서 놀랐던 적도 있다. 생각의 속도가 말하는 속도보다 더 빨라서인지 말하는 내용에 있어서 생략을 많이 하게 되어 간혹 상대방이 되묻는 경우도 많이 있다. 사실, 확실히 실감하지는 않지만 내가 말하는 것이 어렵거나 헷갈릴만한 내용도 아니고 느리게 말해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생략이 많다는 것밖에 없으니 거기에 해당하려니 한다. 실제로 mbti에서도 직관을 자주 사용하는 n유형이다. 까다로운 무언가를 설명할 때도 느긋한 속도로 말하다 보니 내용조차도 이해하기 쉬운 내용인 줄 아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일을 잘하는 편이 못 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말하는 것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인하여 전달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서, 짧은 말에도 제스처를 섞을 때가 많다. 낮은 목소리는 사실 신뢰감과 차분한 분위기를 줄지언정 전달력면에서는 높은 톤보다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또한 같은 것을 두 번 세 번 설명하는 것도 번거로워서 좋아하지 않고, 말보다는 글로 정확하고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한번에 전달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마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외향적이고 설명을 물 흘러가듯이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을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다는 부러운 시선으로 보게 되곤 한다.


  지금까지가 나의 과묵함과 말수가 적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고, 나 같은 '과묵한 사람이 겪어야 할 어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지금 나누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지금처럼 말이 적어서 손해 본 것보다는 득을 봤던 일이 없을까?라는 질문에 답해보고 싶다. 실제로 말이 적은 것이 생각보다는 말이 많은 것보다 좋은 인상을 줄 때도 있는 것 같다. 상대방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는 것이 원만한 관계 형성에 유리하다는 것은 부조리 같긴 하지만 그것이 좋은 처세인 것은 확실하다. '나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것을 확실히 표현하는 것'보다는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오해 없이 전달하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쉽기도 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잘 먹히는 방법임을 언젠가부터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전자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후자를 잘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둘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자의 스타일인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택의 여지가 딱히 없었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어도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따라서 첫 만남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나쁘지 않게 보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과묵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리액션과 상대방의 말을 궁금해하고 관심 있어한다는 최소한의 표현만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흥미를 갖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아주 오래 전인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진정한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대부분이 조용한 친구들이었고, 나와 있을 때는 속마음을 많이 털어놓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말을 재밌게 하고, 가끔씩 보여주는 적극적인 태도 때문에 좋아하는 친구들은 적었지만,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친구들은 훨씬 많았다. 내가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간혹 있었는데, 그들도 나의 특이한 유머 코드 때문에 좋아했을 뿐이지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라서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내향성에 대한 열등감이 생기기 전까지는 여러 많은 친구들과 둥글둥글하고 원만하게 잘 지내는 성격 좋은 초등학생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지나친 열등감과 위기의식으로 조금씩 어긋나 버렸지만 말이다.


  침묵이 금인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침묵이 주는 진솔함때문이다. 화려하고 꾸미고 치장한 것이 신뢰감을 주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꾸밈없이 단순한 것이 주는 거의 유일하지만 강력한 메시지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를 속이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다.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고 거짓말을 할 수 없듯이, 말없이 이루어지는 단순한 소통은 솔직할 수밖에 없다. 정직이 항상 능사는 아니고, 겸손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결국에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순간에 정직하고 겸손하기 위해 침묵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이미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사람들은 은연중에 신뢰감을 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미 입이 무거운 사람이 중요한 순간에 가벼워질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쓰고 싶은 침묵의 장점은 바로 겸손이다. c.s. 루이스라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나 자신에 관한 생각을 더 '적게' 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겸손은 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낮게 생각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말수가 적으면 겸손하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겸손하다기보다는 겸손하다고 평가받는 경우에 불과하다. 그런데 겸손하다고 평가받기만 해도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이목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예상도 하지 않았던 특기에 놀라워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유머에 빵빵 터지는 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는 남들에 비해 그렇게 대단한 특기도, 유머도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속한 어떤 집단에서 나를 생각보다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어서 놀랐던 적도 있다. 겸손하고 말수가 적다고 내가 소속된 곳의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어필할 기회가 줄어든다기보다는 양보다는 질로 승부를 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다양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특기, 나만의 유머감각들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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