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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07. 2024

스무살의 추억 上

혼자만의 시간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이상의 '날개'를 읽으며 내가 굉장한 천재인줄만 알았던 시절. 오늘도 나 자신과 연애하며 방구석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편으로 대학교 첫 성적표를 받아보고 큰 충격에 잠시 멍해졌다. '낙제'를 의미하는 F 학점이 5개, 그리고 A, B, C학점이 각각 1개 있었다. 각각을 하나씩 받았으니 학점을 모으는 콜렉터인 것 같기도 하고, 권총같이 생긴 걸 많이 받았으니 서부시대의 카우보이라도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처음엔, 좌절과 고뇌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긍정적이며 요절할 천재이니까 대학교 성적따위는 나에게 어떠한 거리낌을 주지 않으며, 장벽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중요한 게 세상에는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왜 지금 그리고 20살 이전까지는 성적에 목을 매며 살아왔던 것인가. 잠시 반성해본다. 얼마 전까지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높은 성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가치라는 것이 지금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잠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고, 배는 살살 아파온다. 그리고 이제 이것을 누구한테 어떻게 말을 할지를 생각해보다가, 땅바닥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아예 땅을 손에 짚고 엎드려버린다.


"천재는 개뿔. 나는 이제 망했어....."


  사실은 빌 게이츠도 그렇고, 아인슈타인도 낙제생으로 유명했으며,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는 반항적인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발표와 팀플이 있는 수업을 소심한 탓에 제끼고, 구내식당에서 학식을 혼자 먹는 것조차 유난히 수치스러워해서 화장실에서 밥버거를 먹는 대학생이었다는 이야기는 상상도 못할 내용이기에 아마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려니 한다. 그렇다, 나는 공부도 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지도 않는 대학생이었다. 단지 4년 뒤의 졸업장을 위해 부모님의 통장에서 300만원이 가까운 학비를 꺼내 쓰는 불효자이자 초라한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게다가 학교 이외의 다른 곳에도 발을 들이지 않으며, 집에서 특별한 무엇을 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내 라이프스타일의 법칙이었다. 다른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집에서 은둔하며 혼자 지내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개강총회에는 꼭 나가봐. 나랑 약속할 수 있지?"


  새 학기가 시작되자, 나의 고민을 아주 유심히 들어주며, 끄덕이고 맞장구쳐주던 형이 말했다. 3살 차이나는 나의 친형은 그 시절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도 하고, 성인이 돼서 옷 입는 것이나 자기 관리 등 필요한 조언들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주 하던 말버릇이 바로 이것이다. 마지막에 무엇인가 과제를 던져주며, 나랑 약속을 할 수 있지 않냐고 세심하게 케어해 주는 것이었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본 형은 내 인간관계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개강총회에 한번 가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 말을 마치 개밥그릇에 내던져버리듯이 무시한 채 갈 길을 갔다. 사실 충분히 개강총회에 나가보는 것이 역시 좋다는 내 스스로의 결론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일 정도의 수줍음과 낯가림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나를 가로막았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라서 극심하게 주저되었던 것이다. 결국 고민을 반복하고 반복하다가 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하는 FPS 총싸움 게임에 몰입하며 보내는 것으로 결론을 지어버렸다. 그 모습을 형이 보기에도 그렇고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에휴, 너 알아서 해라" 개강총회에 안갔다는 말에 결국 한숨을 쉬며, 내 방에서 나가는 형이었다. 나는 이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학교 과활동을 불참해버렸는데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이제 진정한 아웃사이더가 돼버린 걸까. 잠시 실감이 가지 않으나, 이내 스스로 자처한 외톨이 생활에 대하여 실감이 가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수치심이란 놈이 나를 덮는다. 당장 공강 시간은 물론이고, 주말에 가야할 곳도 만날 사람도 아무도 없다. 지금처럼 게임의 가상 공간에서 저격수로 활약하며 시간을 떼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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