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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06. 2024

내 친구 '장'에 대하여

  내 절친한 친구인 장은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해서 대안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당시 그가 다닌 대안학교는 일반적인 학교의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학교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싸움을 잘해서 대안학교의 형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키도 작고 인상도 순한 편이지만, 초등학생 때 싸움만큼은 잘해서 자신을 화가 나도록 괴롭힌 형을 눕혀놓고 때렸다. 그는 마치 그런 이야기들을 자신의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그 누구도 가지기 힘든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약간은 자랑처럼 여기는 듯하다.


  그리고 장은 겸손하다고 말하기는 힘들 정도로 높은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무엇때문인지는 모른다. 쉽게 가르쳐주기 어려운 근거일 수도 있다. 사실 나에게는 자신감의 근거가 없다고 생각될 뿐이지 그는 자신감 자체가 없는 소심쟁이는 아니다. 또한 장은 자유로운 영혼인 동시에 다소 내향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처음 그를 보는 사람들은 아마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교적 자유분방하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첫만남에서 언제나 숫기가 적고, 낯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런 특징들 때문에 나는 그를 처음 봤을 때 장과 친해지고 싶었다.

  

  처음 고등학교 새학기가 시작했을 때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며 관심을 표현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그에게만큼은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몇 마디를 해도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은듯 웃을 뿐이었다. 다른 애들은 이상하게도 장이 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건방지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희한하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한 성격이라 그런 반응을 보이겠지 하고 그렇게 싫지 않았다.


 나는 장의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장은 내 생각보다 희한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약간 머리가 돌은 사람처럼 보일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웃기고 이해가 가는 내용이라 유심히 들으며 웃곤 하였다. 당시 나는 장의 이야기를 가만히 집중하며 듣는 것을 참 좋아했다. 과장된 몸동작으로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성대모사를 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어이 없어서 빤히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서로 대화를 나눠보면 말이 잘 통했다.



  장은 내면의 파도가 심한 사람이 아니다.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마음을 지녔다. 그 수면 위나 아래에 예상치도 못한 것들이 떠다니고 가라앉아있긴 하지만, 쉽게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에게는 또한 열등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얼핏보면 열등감 자체를 거의 느껴보지 않은 듯 보인다. 또한 자존감이 낮을 수는 있지만, 낮은 것때문에 압박감을 느끼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장과 함께 지내며 장을 보면서 가장 놀라고 다시 보게 됐던 점 중 하나이다. 그가 결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함이 있는 것때문에 또 다른 결함을 만들어내진 않는다. 자신이 가진 나쁜 점은 그저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가 가진 좋은 점 중 하나이다.


  그가 마음이 좁을지언정 깊고 잔잔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알고서 그가 내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할때가 많이 있었다. 나와는 결이 다르지만, 배울 점이 많고, 의지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나도 장이 그만이 가진 내밀한 자격지심과 열등감과 문제점들을 잘 알게 되었다. 사실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나도 장을 예전만큼 전적으로 존중하고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나중에 보이기 시작한 좋지 않은 점들이 장의 좋은 점들을 가렸다. 장에게 다가갔고 장과 친해지고 싶어했던 그 이유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는 장에게 함부로 대할 때가 많아졌다. 장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내 친구 장과의 관계를 다시 되돌렸으면 좋겠다. 내가 장을 존중하고, 좋은 점들을 다시 바라보려 노력하면 장과 함께 예전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와는 결이 다른 친구이지만, 다른 결이 만나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내듯이, 그와 함께 예상치도 못한 기쁨들을 발견하며, 한바탕 크게 웃어넘기기도 하며, 각자의 새로운 면들을 다시 발견하기도 하며 그렇게 다시 지내게 될 날들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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