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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Feb 16. 2021

나는 왜 대학원을 가는가

학부의 끝에서 (1)


학부 16학번 화석이었던 내가 석사 20학번 새내기?!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부쩍 예민해졌다. 학부 졸업은 실감도 안 나고, 애초에 자대 대학원 진학이라 생활 면에서도 크게 변하는 게 없는데도 새삼 긴장을 하고 있다. 연구실 OT 기간 동안 안 하던 짓을 하더라. 평생 쓰지도 않던 다이어리를 구해서 일일 목표 따위를 적지 않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말에 출근해서 몇 시간 머물며 논문을 읽으며, '주말에 출근하니 월요병이 없어서 좋다. 헤헤' 이런 망언을 진심으로 생각하질 않나. 잔뜩 기합을 넣은 채로 2020년을 시작하였다.


 차라리 그 시간은 열심히 논문이라도 읽으면서 불안감을 외면했는데, 설 연휴부터 시작된 입학 전 '마지막 방학'을 보내는 동안은 정말… 왜, 그럴 때 있잖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사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렇게 붕 떠버린 시간을 보내며 허무하달까,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상념 속에서 투정만 많아지고, 자꾸 엄살만 부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예민하구나. 그걸 알아채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결국 왜 그렇게 내가 긴장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규명할 수 있었다. 이유는 이랬다.


 나는 평생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이미 걸어온 길이어서, 돌아갈 수 없는 지금 시점에서 후회가 없다, 뭐 이런 게 아니라. 그때도 알고 있었다. '아, 더 바랄 게 없구나,' '최고다,' 이런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운이 더럽게 좋은 편이었거든. 경기과학고등학교, 카이스트. 열일곱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 나이 때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환경에서 있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적어도 내겐 과분한 사치 같은 시간이었다. 근데 지금은, 석사과정을 선택한 나는 확신이 없다. 가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과연 이것이 스물넷의 누군가가 그 시기에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두렵다. 첫째로, 그 시간이 그 '동안' 얼마큼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20대 가장 혈기왕성한 시간을 사회에서 부딪히며 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차라리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하는 것이 그 시간을 더 충만하게 보내는 것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하기로서는 대학원 생활이 그저 30대를 위한 투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기분이 든다. 근데 그건 순간을 살아가는 적절한 자세가 아니다. 보상 심리를 갖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은 후회를 만든다. 앞으로의 2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이 시간이 그 '이후에' 얼마만큼의 의미로 남게 될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잘 견뎌낸다면, 나에게는 공학 석사/박사라는 명함이 붙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온통 그쪽으로 특화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너무 구체적으로 정형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최선의 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선택을 통해 나의 인생은 내가 잠시 꿈꿨던 것들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나는 제법 문과 성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과학고를 입학하면서 문예창작과를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접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교육자의 꿈은 갖고 있었지만, 종합대가 아닌 과학기술원을 다니게 되면서 교사라는 직업은 다시 미래에서 지워졌다. 나는 뭐 하나 독보적으로 잘하는 게 없고, 이것저것 기웃대며 다양하게 관심 분야가 많은 사람이다. 내가 평생 '전문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먼 미래에 내가 시인이나 교사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불가능할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전자공학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될 때, 나의 20대가 매몰비용처럼 느껴지게 된다면 그것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말하자면, 내가 대학원을 간다는 것의 의미를, 그 정당성을 답할 수 있어야 했다. 솔직히 안일했던 것 같다. 학부 생활 열심히 하느라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고, 대학원 가서 몸값 높이면서 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지*-라고도 생각했다. 견딜 각오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고 싶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포로보다는 가슴 뛰는 도전을 하는 모험가가 되고 싶다. 나는 행복한 대학원생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이 꽃길만 걷겠냐마는, 고생을 하고 괴로운 시간을 견디게 될지라도 그 이유를 내가 안다면 되는 일이다.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나는 왜 대학원을 가는가?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전문연구요원제도를 활용하여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다.

**이 글은 2020년 2월 28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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