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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Feb 16. 2021

대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

학부의 끝에서 (2)

대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 나는 무엇을 얻고자 대학원 과정을 밟는가.



 학위를 위해서?

 물론 석사, 박사라는 타이틀이 내게 더 많은, 나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내 시간의 결과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는 마인드는 현재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불행하겠다는 얘기다. 그렇게 얻은 미래가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대학원 생활은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 있어야 한다. 


 군 면제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

 짧은 연구실 OT를 거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박사를 하는 사람에게 군대까지 다녀오라는 것은 가혹한 것이라는 것이다. 정말 매일 같이 새로운 논문이 발표된다. 그것을 follow-up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군대를 가기 싫어서 박사를 하는 사람만큼 멍청한 사람도 없다는 것도 느꼈다. 군대에서는 지겹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만, 연구실에서 박사는 그만큼 지겨우면서도 하기 힘든 일을 한다. 누구나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무나 못하는 일을 하겠다는 얘기다.


 고백하자면, 내게도 위의 결과적인, 부수적인 것들이 작지 않은 목적으로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경험상 그런 보상심리의 논리는 동기로 작용하기보다는 회의의 근거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대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 진짜 목적.


 연구자의 삶은 연구 그 자체와 무척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연구는 삶에 대한 하나의 비유라는 소리다. 선행 논문을 읽고, 실험을 하고, 결과를 만드는 것.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미 비슷한 경험을 거쳤다. 앞선 이들의 경험에서 지혜를 얻고, 직접 실패를 경험해가며, 결국은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배움이고 실천이고 삶 아닌가? 논문은 결국 한 연구자 인생의 일순간에 대한 자서전이고, 그것을 읽는 것은 묘한 감동을 준다. 풋내기인 내가 봐도 대단한 업적을, 뛰어난 연구자들은 실존의 영역에 자취를 남긴다.


 나는 어떤 분야의 일인자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전문가임을 뽐내며 그에 맞는 귀한 대우를 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있다. 지식의 최전선을 탐험하며 한 걸음, 아니 한 뼘이라도 다음 사람을 위한 영역을 넓힐 수 있다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척 가슴 벅찬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귀한 일이겠다. 연구자들은 수많은 실패를 겪고,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는다. 대학원 과정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있는데, 석사의 관점과 박사의 관점은 차원이 다르다. 교수는 넘사벽이라고 했다. 어떤 분야의 정점을 향해 정진한다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은 갖지 못하는 새로운 차원의 관점을 선물한다. 아니, 그런 관점이 있어야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맞겠다. 말하자면 지혜로워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간절하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목소리와 시야를 얻고 싶다.


 결국 연구라는 과정을 통해 나는 삶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셈이다. 그 구체적인 주제, 세부 전공과 무관하게 그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면 연구자는 한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간혹 인격이 덜 된 '석학'도 보인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더욱이 내가 전공으로 선택한 분야, 컴퓨터 비전은 말 그대로 '관점'을 연구하는 분야 아닌가. 컴퓨터의 관점에서 시각 정보를 이해하는 것은 때로 '본다'는 것의 개념을 곱씹어보게 한다. '곱씹어- 본다.' 들어보다, 맛보다, 해보다… 다양한 동사에 '-보다'라는 어미가 붙으면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인간은 정보의 90% 이상을 시각을 통해 얻는다 했던가.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컴퓨터 비전을 연구한다는 것은. (이쯤에서 뽕이 차기 시작했다.)


 내가 대학원을 가는 이유는 삶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연구라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독보적인 관점을 가지고 세상과 인간, 기술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동아리의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해주셨던 멋진 말을 기억한다. "우리는 남들이 학부까지의 배움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동안 계속해서 깊이를 더해가는 중인 거다." 사실 엄청난 특권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대학 졸업하고 바로 생계 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 아예 대학조차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인데. 최고의 환경에서 계속 나의 가치, 값어치 아니고 깊이를 더해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니, 대학원 가는 사람들이 좀 부러워졌다… 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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