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의 끝에서 (3)
대학원 과정이라는 길을 밟고자 하는 이유를 찾았다. 이 여행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두렵다. 이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고 한참을 걷다가도, 때로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생각이 드는 순간은 오기 때문이다.
그냥 노골적으로, (이건 비유도 아니다) 연구가 그렇다. 한 연구실 안에서도 정말 다양한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어떤 주제를 잡아서 어떤 방법론을 적용하는가에 따라서 누군가는 명망 높은 학술지에 이름을 올리고 누군가는 한참 삽질을 하다가 나가떨어진다. 한 주제에 대해서 정말 해볼 것은 다 해봤는데, 온갖 열성을 다해가며 오랜 시간을 투자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때로 그 이유는 개인의 무능함이나 불성실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돌파구가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는 점. 그게 두렵다.
만약 '어떤 연구 주제를 잡아서 석사 2년 동안 그 주제에 집중해 매진한다면 분명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이 보장된다면 정말 마음 편히 그것을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학원 생활에서 내가 기대한 어떤 가치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런 공포가 있다. 애초에 나라는 인간이 학자의 길을 계속 걷기로 한 것 자체가 실수일 수도 있다는 것. 대개 이런 두려움은 노파심에 불과하지만,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길 위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면서 발걸음을 내딛는 기분이다. 한 번뿐인 내 인생, 기왕이면 해피 엔딩을 보고 싶다고.
근데, 며칠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 행동의 결과를 내가 모두 알고 있다면, 그러니까 '나의 수명은 xxxx일인데, 지금 여기서 이 술 한 잔을 먹으면 수명이 사흘 줄어, ' 이런 식으로 나의 모든 행동의 결과를 알고 있다면. 어떨까? 나는 꽤 열심히 살 것 같다. 하면 되는 일을 열심히 할 것이고, 하면 안 되는 일은 꾹 참겠지. 해도 안 되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다. 근데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더라. 어쩌면 잠깐 열심히 살다가 지쳐서 그냥 손해를 감수하고 한량 짓만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나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충만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오늘을 더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무지(無知)는 때로 보장된 보상보다 더 큰 동기로 작용한다.
때문에 내가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겁을 먹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만큼 더 열심히 주위를 살필 것이고, 혹시나 놓칠세라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며, 자주 나의 상태를 점검하며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기에. 나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오직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최선임을 기억하며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니 적당한 긴장감은 오히려 즐기기로 했다. 괜히 겁먹지 말자고. 주말 동안 드라마 <닥터 후>를 다시 보다가 유독 와닿은 대사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걸 마주할 때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쓰지.
그런데 너는, 웃더군.
캬... 미지(未知) 앞에서 웃을 수 있는 '빌'이 너무 멋있었다. 나도 어려운 문제를 한참 고민하다가 '아, 이거 재밌네' 생각해본 적은 있다. 그런데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마주할 때 적대감이 아닌 반가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신비에 대한 경이감? 어느 쪽이든 고수의 자세라고 생각이 들더라.
어차피,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다. 후회를 하더라도 해보고 하자고. 내 대학원 생활이 어떻게 펼쳐질지- 과연 어떤 성장과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모른다. 이 도전에서 기대하는 것은 있지만 확신은 없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안다. 나는 시작하면 끝은 보는 사람이고 실패 속에서도 긍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웃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실패하면 뭐 어떠냐는 배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