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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Mar 29. 2021

엉덩이의 무게

석사 1년 차의 연구실 적응기

 대학원에 들어오기도 전부터, 생활 면에서 줄곧 걱정하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예컨대, '다 같이 밥을 먹는 것'. 본투비 아싸인 내게 혼밥은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함께 밥 먹는 행위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같이 밥을 먹기 위해 1) 팟을 모으고 2) 메뉴를 고르고 3) 서로의 속도를 배려하며 먹으면서 4)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집중하고 5) 돈을 계산해서 보내는 그 일련의 과정을 매 끼니 할 자신이 없었다. (부담스럽다는 소리네;) 동시에 밥팟에 참여하지 못하면 내가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각하면 모멸감이 든달까, 내가 없는 자리의 대화라던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또 하나의 걱정은 '연구실 자리에 잘 앉아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둘은 같은 맥락의 스트레스인 것이, 나는 혼자만의 공간이 좀 필요한 사람이다. 아무리 편한 사람이라도 온종일 옆에 붙어있으면 조금 힘들다. 룸메랑도 벌써 5년째 기숙사 방을 공유하며 거의 형제와 다름없이 지내지만, 주말 동안 방에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왠지 답답하여 목적지도 없이 밖을 나돌아 다닌다. 더욱이 연구실 선배가 상주하며 교수님이 들락날락하는 연구실 환경은, 괜히 감시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나는 애초에 공부를 책상 앞에서 하지 않는다. 이건 사실 14살 중학생 때부터의 10년도 넘은 버릇인데, 나는 학습실이 주어져도 그곳에서 최소한의 시간만을 보내며 휴게실에서, 야외에서 공부를 했다. 학부 때도 모든 시험공부를 맥도날드나 동아리방, 빈 강의실을 쏘다니며 숨어서(?) 했으니 말 다 했다. 변명하자면, 남들이 다 공부하는 환경에서 내가 집중이 안 되면 괜히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면 주위에 방해가 될까 봐 또 신경 쓰이고, 공부도 못하고 마음도 불편하다. 좀 편한 곳에서 요란하게 혼잣말도 하고, 몸도 움직이면서 시동이 걸려야 진득하게 앉아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자유로운(?) 천성 때문에 올해 초에는 꽤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다. 논문을 한 편 뽑아서 도서관이나 맥도날드, 동방에서 읽고 왔다. 괜히 식사 시간에 어중간하게 겹쳐서 가서 혼밥할 명분을 만들기도 했다. 사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휴대폰 보는 시간을 합치면 절대 가성비 좋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런 시간을 하루에 포함하지 않으면 연구실에서 12시간을 꼬박 보낼 자신이 없었달까.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자꾸 연구실 밖으로 나가고 싶었고, 아직 교수님이 나를 자주 찾을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틈만 나면 소심한 일탈을 거행했다. 한두 시간의 외출 뒤에는 자리에 돌아와서, 생각보다 그 시간 동안 한 것이 없음을 깨닫고는 좀 더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고 있어야지 반성하기도 했다.


 근데 최근에 돌아보니, 나는 이런 것들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일단 깨달은 것이, 남들은 내가 혼밥을 하든 자리에 없든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걱정은 내 비대한 자의식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심지어 교수님도 내가 자리를 비웠다고 뭐라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내가 앉은 자리가 교수님이 학생 찾을 때 연락하는 연구실 내선 전화 자리랑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데, 이게 장단이 있다. 단점은 다른 분이 전화를 대신 받으면 내가 자리에 없단 사실이 간접적으로 들통난다는 것이고, 장점은 교수님이 찾는 사람이 없을 때의 교수님 반응을 내가 매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교수님이 직접 찾을 때 그분이 자리에 없는 일이 꽤 많은데, 그렇다고 교수님이 매번 "이 녀석 어디 갔어!" 이런 반응을 보이시지는 않는다. 또 내가 그분한테 "교수님이 형/선배 찾으셨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듯이 다른 분들도 내가 자리에 있어야 할 때는 개인적으로 알려 주시고. 매일 감시받는 기분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냥, 내가 엉덩이가 좀 무거워졌다. 사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고 넘어가도 좋지만, 그 비결을 공유한다.


 첫째는 연구실이 '편한 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연구실 환경을 내가 있고 싶은 곳으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더블 모니터가 매우 큰 역할을 했는데, 작은 모니터 하나를 들여다보며 연구를 할 때는 '굳이 기숙사에 있지 않고 여기 있는 이유는 뭘까' 이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그런데 모니터 하나가 추가되니까 주말에도 게임을 할 게 아니면 굳이 기숙사에 있을 필요가 없달까, 교내에서 내가 가장 편하게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연구실이 되었다. 또 연구실에서 유튜브나 웹툰을 보는 것이 완전 금기가 아니라, 식사 시간이나 아침에는 적당히 허용되니까. 어딘가에 숨어서 뭘 할 이유가 없어졌다. 연구실 커피머신이 있으니 밖에서 돈 쓸 이유도 없고, 모두가 퇴근한 시간이면 정수기에서 얼음을 받아와 서랍에 숨겨둔 위스키(쉿)를 온더락으로 마실 수도 있다. 물론 이런 편 생활이 연구실에 사람이 있을 때도 막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자리를 '나의 공간'으로 만들고 나니 연구실에 있는 시간이 훨씬 쉬워졌다.

 둘째는 그냥 내가 바빠졌다. 대학원 들어오고 초기에는 논문만 주구장창 읽으니까 좀이 쑤셨다. 논문 읽는 것은 밖에서도 할 수 있었는데, 수업도 듣고 직접 컴퓨터로 작업해야 할 일들이 생기니까 밖으로 나갈 짬이 없더라. 요즘은 시간이 훅훅 간다. 점심 먹고 뭐 했다고 벌써 저녁 시간이고, 할 일 하다가 시계를 보면 벌써 9시가 넘어서 슬슬 퇴근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난 차라리 바쁜 게 낫다. 사실 전에도 바쁘게 지낸다면야 계속 바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어딘가. 일에 서서히 관성이 붙는 것 같다.

 셋째는... 음. 없다. 뭔가 삼의 법칙에 맞게 세 가지를 쓰고 싶어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영업할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학기 초부터 쓰던 장비였기 때문에 나의 변화를 야기한 소품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노캔 헤드폰 좋습니다. 이제 이어폰은 쓸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어... 조금의 집중력과 더해지면 어떤 공간에서든 독립된 나만의 환경을 구성할 수 있어요! 와! (결국 영업함)

 ... 그렇다. 내가 학기 초에 선배들한테 "자리에 온종일 앉아있는 게 힘들어요" 했을 때 모두 "조금만 지나 봐, 알아서 된다"라고 하셨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도 제법 무거운 엉덩이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나 이제 집중 잘하지 칭찬해줘- 뭐 이런 얘기가 아니라, 내가 최근에 '아.. 나의 엉덩이는 너무나 무거워져 버렸다'라고 자각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꾸 엉덩이 얘기하니까 민망하네) 뭐, 온종일 앉아만 있었더니 물리적으로 육중해진 것도 있지만, 이 얘기는 아니고.


 며칠 전의 일이었다. 늦은 저녁, 박사 선배와 다른 연구실에서 1년 하다 온 석사 형과 함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었다. 열띤 이야기가 오가던 와중에, 갑자기 뒷문이 열리더니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오늘은 본원으로 출근하시는 날도 아니었고, 평소였어도 퇴근하셨을 시간에 갑자기 들이닥친 교수님을 마주하니 나도 깜짝 놀랐다. "헛,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형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만 앉아있었다고. 교수님은 "어, 앉아 앉아" 하셨지만 나는 이미 앉아있었다고. 교수님께서는 열심히 하라는 응원을 건네고 바로 나가셨지만, 나는 왠지 방금 의자에 붙은 것처럼 앉아서 인사를 올렸던 내 모습이 신경 쓰여 한동안 세미나에 다시 집중하지 못했다. 아... 나도 자각했는데 교수님이라고 인지하지 못하셨을까, '저 놈 보소' 생각하시진 않으셨을까.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음, 나는 사실 좀 싸가지 없는 놈이 맞는 것 같다. 못 배운 놈은 아닌데, 예절이 몸에 배지는 못한 것 같다.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몸에 묻어 나오는 편이다. 맘에 없는 행동도 잘 못 한다. 그래도 웃어른들한테 예쁨 받는 편인데 그건 내가 대체로 진심으로 그들을 좋아해서다. 그래서 막 '깍듯'하진 않아도 서투른 존대에서 마음이 전달되는 편인 것 같다. 근데 또 그런 것들을 '내가 잘해서'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 그분들이 양해해주시는 게 맞다. 정말 예절을 중시하는 분이라면 지적할만한 일들을 나도 알게 모르게 자주 한다.

 고백하자면 사실 우리 교수님을 내가 정말 정말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지는 못했다. 주위에 교수님 타령도 자주 하고 다녔고... 근데 근래 생각해보니까 교수님이 나를 되게 너그럽게 봐주고 계신다는 것은 맞다는 것을 느낀다. 성인(聖人)이라던가 위인 까지는 아니지만 내게 여태 부당한 일을 하신 적도 없고, 오히려 나에게 해주신 일들만 생각하면 결코 내가 욕하고 다닐만한 분은 아니다. 무엇보다, 좋든 싫든 어차피 오래 볼 사이 아닌가. 내가 최선을 다해 존대해야 하는 분은 맞는 것이다.

 사실 선배들에게 전해 듣기론 교수님이 압존법도 신경 쓰시는, 정말 윗세대분은 맞는데. 내가 교수님 전화 받을 때 선배 호칭이나 존대에 압존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었거든. (압존법 너무 어렵다;) 근데 여태 한마디도 지적을 안 하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냥 봐주시는 거다. 아직 석사 1년 차, 삐리니까. 그러나 그 호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니까, 내가 지적당할 만한 일을 안 하는 게 맞다. 잘해야지.

 필요 이상으로 반성하진 마라는 얘기도 들었다. 요즘 세상에 예절로 왈가왈부하는 것도 꼰대라지만, 사회에 꼰대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맞출 줄 아는 것이 사회화 아닌가. 나만 꼰대 안 하면 되는 거고... 교수님이랑 잘 지내고 싶다. 지도교수님을 존경하는 것이 행복한 대학원 생활의 첫걸음이다. 내가 더 잘해야지.


오늘의 교훈 -

 "엉덩이: 연구실 안에선 무겁게, 교수님 앞에선 가볍게."


*이 글은 작년 이맘때쯤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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