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학술대회 풍경
학술대회는 연구자에게는 축제이고, 대학원생에게는 고된 연구실 생활 속 단비와 같다. 그러나 지난 한 해, 코로나19로 인해 학술대회가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전환해 학회 참가를 기대한 사람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다면 온라인 학술대회는 어떻게 운영이 되었을까? 오프라인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코시국' 속에서 첫 학회를 경험한 석사과정 1년 차 대학원생의 후기를 공유한다.
"코로나19 신규 확진 569명, '3차 대유행' 시작"
2020년 11월 27일, 아침 9시. 평소라면 기숙사 침대에서 알람을 끄고 연구실 출근할 준비를 할 시간이지만, 나는 광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뉴스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난 3월 이후로 확진자가 이틀 연속 500명 이상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더 찾아보니 광주는 내가 머무는 대전보다 일일 확진자 수가 배는 많았다. 나는 괜히 마스크를 단단히 고쳐 쓰고 눈을 감았다.
내가 광주로 향하는 까닭은 2020년도 대한전자공학회 추계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함이다. 지도교수님께서 연구실 석사과정 1년 차 학생들은 모두 작은 연구 성과라도 국내 학술 대회(이하 학회)에 투고해볼 것을 권하셨다. 논문 작성을 미리 경험해보고 학회에 다녀오라는 뜻이리라. 국문 두 페이지 분량이라 부담도 적고, 국내 학회는 웬만해서는 거의 다 통과시켜준다는 연구실 선배들의 말을 듣고 나는 사실 논문을 금방 써서 제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첫' 논문은 그리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애착이 생겨 계속 들여다보다가 결국 제출 마감 날짜 당일까지 수정을 거듭했다. 다행히 제출 결과는 'Accept'이었다. 심지어, 내 논문이 최우수논문상 후보 셋 중에 하나로 선정되었다!
학회에 논문을 제출한 연구실 석사과정 동기들도 모두 통과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대한전자공학회는 온라인으로도 학술대회 참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했고, 구두 발표와 포스터 발표 모두 온라인으로 참여할 것을 권장했다. 다만 나는 최우수논문상 심사와 시상식을 위해 현장에 직접 와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홀로 광주행 버스를 탄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석사과정 동기들과 다 함께 학회에 왔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여러모로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름 나의 '첫 공식 출장'을 즐기기로 했다. 연구실로 출근하는 대신 외지에서 바람도 쐬고 특별한 경험도 쌓는다니,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함께 하지 못한 동기들의 몫까지 학회 현장의 모습을 두 눈에 담기로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학회가 열리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 도착했다.
심상치 않은 날씨에 학회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들어갔다. 김대중컨벤션센터는 정말로 넓었는데, 그에 비해 사람이 적어 다소 썰렁했다. 학회 행사는 2층에 따로 마련된 공간 안에서 대부분 진행되었다. 등록 절차를 마치고, 중식 교환권을 받는 동안에도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오프라인 참가자 수가 운영위원 수보다도 적은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없는 건가' 생각하며 나도 식사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전년도에 학회에 다녀온 선배의 말에 의하면 학회는 보통 호텔에서 진행하고, 등록할 때 'banquet(연회)'를 선택하면 점심에 뷔페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시국에 뷔페는 역시 어려웠는지, 샌드위치와 과일, 견과류 등 간단한 간식거리를 제공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아쉬운 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의 발표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학회장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초청 발표와 시상식이 이뤄지는 큰 홀에는 YouTube 생중계를 위한 여러 대의 카메라가 연단을 향하고 있었다. 일반 구두 발표는 일곱 개의 세션장에서 진행되었다. 학회에 온라인으로 참가하는 인원들은 이메일로 송부된 프로그램집을 보고 zoom* 링크를 통해 세션장에서 이뤄지는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세션장 자체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좌장도 zoom을 통해 참여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그러면 사전에 녹화한 구두 발표 영상을 순서에 맞춰 송출하는 운영위원만이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포스터 발표는 전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다. 학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업로드한 5분 내외의 발표 영상을 관심 있는 사람이 직접 찾아보면 되는 방식이었다.
온라인 학회는 물리적 제약 없이 어디서나 참가가 가능하다는 장점 덕분에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낀 학회의 분위기는 다소 침체된 느낌이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구두 발표 세션도 zoom 회의실에 참가하는 인원은 해당 프로그램의 발표자들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미리 녹화한 발표 영상을 송출하는 방식 역시 참여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였다. 연구실에서 온라인으로 참가한 나의 석사과정 동기는 본인의 발표 영상조차 보지 않았다고 했다. 발표가 끝난 뒤 있을 질의에 답하기 위해서 zoom 회의실에 참여했지만, 듣는 사람이 없으니 질의를 던지는 것도 좌장 한 명뿐이었다고 실망감을 전했다.
다행히 나는 최우수논문상 심사를 위해 현장에서 심사위원과 다른 후보들 앞에서 발표하는 경험을 했다. 준비한 15분가량의 발표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보잘것없는 석사과정 1년 차의 연구 결과를 교수님들, 또 동료 연구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어 많이 긴장했지만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청중이 많았으면 더 떨렸겠지만 그만큼 더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심사위원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지금 온라인으로 듣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질의하실 분은 채팅으로 부탁드립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나는 연단에서 내려왔다. 짝짝, 박수 소리가 빠르게 잦아들었다. 그렇게 나의 첫 학회 발표가 끝이 났다.
*zoom: 실시간 화상회의 플랫폼.
학회는 연구 성과 발표, 정보 공유를 위한 모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학회는 연구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의 장이다. 학회 현장에서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논문의 저자를 만나거나, 한 분야의 대가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연구를 처음 시작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된다. 꼭 대단한 연구자들을 만나지 않아도 좋다.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 그 안에서도 저마다의 문제를 고민하는 동료 연구자들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외롭고 지치는 연구 생활에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자리이므로, 학회에서 갖는 모든 만남은 서로의 성취를 축하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전제한다. 그런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때문에 학회는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학회는 그런 '만남의 장'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발표 영상을 학회 측에 전달하고, 그걸 학회가 다시 참여자에게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된 까닭에 참여자 간의 소통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가상으로라도 마련되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를테면 각 분야별로 오픈 채팅방을 만들거나, 발표 참관을 장려하는 이벤트를 기획했다면 재미있게 참가했을 것 같다.
오프라인 참가자들을 위한 배려도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포스터를 따로 모아놓은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관심사와 달라서 기대 없이 마주친 포스터도 영감과 자극을 받는 경험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라는 매체는 애초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연구산출물을 홍보하는 목적을 갖는다. 그것을 한눈에 보이도록 전시하지 않고 온라인 게시판에 제목과 저자 정보만 걸어놓으면 오히려 접근성이 떨어질 뿐이다. 바쁜 시간을 내어 현장을 찾은 참가자들에게는 오프라인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싶다.
물론 학회가 활기를 띠기 위해서는 참가자들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학회에 능동적으로 참가한다면 현재 시스템도 여러 연구 발표를 직접 듣고, 댓글과 채팅을 통해 저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기껏 열심히 준비해서 제출한 논문이 통과되었는데, 많은 것을 얻어갈 기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최 측은 어떻게 더욱 매력적인 온라인 학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참가자는 어떤 태도로 온라인 학회에 임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2021년에도 코로나19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서로 마스크 없이 한 자리에서 마주할 그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때까지 위기를 기회 삼아 더 발전한 온라인 학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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