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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Jun 25. 2021

이공계 대학원생 생활 실태 보고서

전국의 대학원생들이여, 안녕하라!

"어제도 실험이 끝나질 않아서 새벽 1시에 퇴근했어."

"옆자리 선배는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수술해야 한다더라."

"너도 신경정신과에서 약 처방받아봐. 나는 지난 학기부터 우울증이랑 불면증 약 먹고 있는데..."


    이따금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들을 만나면 암울한 이야기가 오간다. 소문처럼 들려오는 연구실 괴담(?)까지는 남 일이래도, "잘 지낸다"라고 말하던 친구 역시 고된 대학원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와 피로를 자연스럽게 내비치며 곧잘 자조 섞인 농담을 뱉는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놀림으로 표현하던 와중, "행복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라는 친구의 말에 기분이 못내 씁쓸해졌다. 학생과 근로자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졸업에 대한 부담과 과로에 시달리며 20대를 보내는 대학원생.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안녕하게' 살고 있을까? 이공계 대학원생 40명(KAIST 재학생 30명)과 대학원 생활 실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KAIST를 재학 중인 대학원생 A, B*와 설문 결과를 함께 살펴보며 이야기도 나눠보았다.

 *대학원생 A는 석사과정 2년 차, B는 박사과정 3년 차다. 진솔한 대화 내용을 그대로 담기 위해 익명으로 처리했다.


 설문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의 재학 학기 수. 석사과정 26명과 박사과정 14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Q. 대학원생의 취침/수면 시간은?



대학원생의 평소 취침시간. 또 다른 질문에서 설문 참여자의 30%는 하루 수면 시간이 6시간 이하라고 응답했다.

    이공계 대학원생의 취침시간은 다양했다. 응답자의 65%가 새벽 1시 이후에 취침한다고 답했으며, 20%는 새벽 3시 이후 늦은 새벽에 잠든다고 말했다. 하루 권장 수면시간인 8시간 이상 잠을 자는 대학원생의 비율은 응답자의 5% (2명)에 불과했다. 2019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20대의 평균 수면 시간 (8시간 22분)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치였다. 


A: 나는 고등학교에서 대입 준비할 때보다도 잠을 적게 자는 것 같아. 하루 종일 연구실에만 있다가 밤늦게 퇴근하면 그냥 잠들기 억울하잖아. 그래서 게임도 좀 하고, 영화 한 편 보다 보면 자정 넘기는 건 금방이지. 잠을 적게 자면 다음날도 하루 종일 피곤하고... 악순환이야.

B: 우리는 연구실 출퇴근 시간이 제법 자유로운 편이야. 전문연구요원* 복무를 시작하기 전에는 전날 늦게 자면 11시쯤 점심 먹고 출근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오전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면 하루가 너무 짧더라. 좀 힘들어도 수면/기상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해놓는 것이 훨씬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 같아.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통해 군 복무 중인 대학원생은 원칙적으로 9시에 출근해야 한다. (유연근무제 선택 시 8시~10시 반 사이) 2021년 병역법 개정으로 일 8시간 근무에서 주 40시간 탄력근무제도로 변경될 예정이다.



Q. 대학원생이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학원생의 연구실 생활시간. 연구실에서 10시간 이상 생활하는 인원 비율은 응답자의 42.5%에 달한다.
대학원생이 '딴짓'을 하는 시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하루 중 2시간 이상을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대학원생의 대다수는 하루의 1/3 이상을 연구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실에 있는 시간을 모두 연구 및 과제, 조교 활동에 전념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사에 응한 대학원생 중 절반 이상이 하루 중 2시간 이상을 유튜브 시청, 웹 서핑, 모바일 게임 등에 할애한다고 고백했다. 


A: 대학원생 생활 반경이 집(기숙사), 연구실 말고 더 있나? 기껏해야 헬스장 정도려나. 우리 연구실은 암묵적인 퇴근 시간이 10시인데, 솔직히 하루 종일 연구실에만 있으면서 모든 시간을 집중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 그래도 3시간 이상 딴짓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게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B: 우리 지도교수님은 하루에 딱 3시간만 집중해도 대단한 거라고 말씀하셨거든. 물론 연구 외에도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아서 바쁘지만 말이야. 연구실에 있는 시간을 무작정 늘리는 것보다는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을 목표로 잡아놓는 게 좋은 것 같아. 빨리 끝내면 일찍 퇴근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도 되고, 또 가끔 탄력 받아서 늦은 시간까지 집중하면 그때의 성취감도 크더라고.



Q. 대학원생의 여가 시간 활용법은? (feat. 운동)


    대학원생이 여가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1. 영상 시청 (유튜브, 넷플릭스 등) - 35명 응답으로 조사되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활동은 2. 게임 (PC, 콘솔, 모바일 등) - 18명 / 3. 운동 (헬스, 풋살 등) - 17명 / 4. 연인과의 데이트 (연애) - 15명 순이었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의 운동 실태는 어떨까? 

대학원생의 일주일 동안 운동 횟수. 응답자의 20%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학원생의 대다수가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한 설문 응답자는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주말을 활용해서라도 주 1회 이상 운동을 한다고 답했다. 한편, 응답자의 20%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A: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운동의 필요성을 엄청 느꼈어. 하루 종일 연구실에 앉아만 있으니까 살도 많이 찌고 몸이 예전 같지가 않더라. 살기 위해 운동한다는 말을 벌써 실감할 줄 몰랐는데, 정말 운동 하나쯤은 해야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좋은 것 같아.

B: 나의 미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학원을 선택했는데, 학위를 받겠다고 몸이 망가지면 결국 아무 쓸모 없는 거잖아. 운동하는 것도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하고 있어. 지금은 오히려 대학원 입학할 때보다 몸이 훨씬 좋아진 것 같기도 해.



Q. 대학원생의 스트레스 관리법은?


    마지막으로 조사한 것은 대학원생들의 스트레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설문 응답자의 40%가 현재의 대학원 생활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대학원생들의 주요 스트레스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대학원생들의 스트레스 원인. 졸업 및 연구에 대한 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컸다.

    또한, 응답자의 1/3이 우울증, 불면증 등의 이유로 인해 신경정신과 (스트레스 클리닉)을 이용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주위 사람으로는 1. 가족 - 22명 / 2. 룸메이트, 학부 친구 등 - 20명 / 3. 연구실 동료 - 14명 등이 있었다. 지도교수님을 꼽은 사람은 7명이었으며,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답한 사람도 10명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으로는 설문 응답자들이 입을 모아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답하는 응답자도 다수 있었다.


A: 아직 연구실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 남은 20대를 모두 연구실에서 보낼 자신이 있는지 자주 물어보게 되는 것 같아. 그러나 누구라도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어쩌면 그토록 어려운 길이라서 견뎌냈을 때 더 큰 보상이 오는 것 아닐까? 각오는 하고 있어.  

B: 연구실 생활하다 보면 몸이 고된 것 보다도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더 많은 것 같아. 특히 학회에 투고한 논문이 연달아 떨어지면 정말 많이 힘들지. 그런데 내 지인은 학회에서 떨어진 논문을 그대로 더 높은 수준의 학회에 냈는데 붙었다고 하더라고. 그런 걸 보면 실패 앞에서 자책하기 보다는 '이번엔 운이 나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도 필요해 보여. 아, 자존감이 떨어졌을 때 옆에서 위로해줄 친구나 동료가 있는 게 정말 중요했어 나는.


    응답자 40명, 질문 열 개 남짓에 불과한 설문이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대학원생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또 건강한 대학원 생활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저마다 연구 분야는 다르지만, 대학원생들은 같은 하루 속에서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 그들의 불안과 스트레스, 그것을 극복하려는 각자 나름의 노력까지 모두 내게는 위로로 다가왔다. 대학원 생활이 어렵고 막막한 것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모두가 흔들리면서, 애쓰면서 이 시간을 이겨낸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이 글을 읽는 대학원생이 있다면 당신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건강하자고, 그리고 꼭 행복하자고. 우리의 대학원 생활이 안녕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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