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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Aug 22. 2023

나는 이제 학교에 살지 않는다.

10년의 기숙사 생활을 마치며

EP01. 빌런과의 조우

- ...그러니까 본인은 사실 담배도 피우고, 이갈이, 코골이도 하고 야간형 생활 습관을 보유하셨는데 기숙사 신청할 때는 생활 습관 '해당 사항 없음'으로 신청하셨다는 거죠?"
- 네. 당연히 1인실 배정을 받을 줄 알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지금 본인과 배정된 랜덤 룸메이트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면서 다섯 명 이상을 호실 이동* 신청하게 만드셨다는 거고요.
- 저는 그분들의 편의를 위해서 경고드린 거죠.
- 본인이 지금이라도 신청을 정정해서 자신과 같은 생활 습관을 가진 분과 기숙사를 사용하실 생각은 없으시고요.
- 제가 흡연을 한다고 해서, 흡연자 룸메이트를 원한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호실 이동: 배정된 룸메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사유가 있을 시 잔여 호실로 재배정받을 수 있음. (새로운 랜덤 룸메이트와 배정, 현 룸메이트의 동의 필요 없음)


    10분간의 통화 내용을 다시 확인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분명 한국말인데, 동시에 개 짖는 소리였다. "랜덤 룸메이트, 어디까지 겪어봤니" 앙케이트가 있다면 단연 1위에 등극할 최악의 빌런을 맞닥뜨린 것이었다.


- 네, 잘 알겠습니다. (사실 모르겠다;;) 저는 다만 지금 XXX님께 룸메이트 맞교환*을 요청드리는 것이잖아요? 제가 같이 룸메이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 다른 방에 있어서, 제가 그쪽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맞교환 동의만 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 그러면 그 방에 원래 배정받았던 분이 이 방으로 오시는 건데, 그분께도 저의 사정(??)을 말씀드렸나요?
- 그건 님이 옮겨오신 분께 직접 설명드려야 할 문제 아닐까요?
- 아니죠. 그분께서는 저에 대한 정보가 없이 맞교환에 응하신 건데, 그분께 저를 떠넘겨 버리시고 알아서 해라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 같습니다.

*룸메이트 맞교환: 지정한 호실끼리 룸메이트를 맞교환하여, 본인이 원하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쓸 수 있음. (누가 어느 방을 쓸 것인지 4인 모두의 동의 필요)
**이미 자취를 하는 지인이 이름을 빌려주겠다고 하여 내가 2인실 비용을 내고 방을 혼자 쓰기로 했다. (원칙 상으로는 안 된다...) 기숙사 입사를 위한 건강검진까지 나 때문에 받아준 귀인이다...ㅠㅠ

그러니까 너도 네가 폭탄인 건 아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무책임이란 단어를 운운할 줄은 몰랐다. 뻔뻔한 자식,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너 같은 놈 때문에 생기는 거구나. 긴 대화를 요약하면 이거였다. "나는 똥이다. 더러우면 피해라." 그가 나의 자취를 결심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화근은 기숙사 신청을 놓친 것에 있었다. 가을학기 기숙사 이용 관련 메일이 왔길래 나는 기존에 쓰던 1인실을 유지하도록 기숙사 신청을 했다. 생활관비 입금 계좌 정보를 곧 안내하겠다는 알림을 확인한 후, 논문 세미나를 하러 갔다. 그리고 기숙사비 입금을 깜빡했다. ㅋㅋ. (심한 말). 원래도 정신의 일부를 나도 모르는 곳에 두고 다니는 편이지만, 논문 준비로 정신이 더 없었던 탓에 일어난 실수였다.

    그리하여 기숙사 추가신청으로 1인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것은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가 맞지만, 그래도 저런 빌런과 함께 6개월을 생활하라니. 그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 아닐까요? 생활관 운영팀에도 연락해 보았지만 그쪽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미 같은 방에서 같은 민원 접수가 있었다는 게 원희근비(遠喜近悲) 웃음 포인트... 결국 나는 빌런에게 패배하여 도망(호실 이동)을 택했고, 외국인 룸메이트와 배정을 받았다. Oh...

    이후로도 몇 번의 호실 이동과, 룸메이트 맞교환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나는 가을학기 생활관을 혼자 이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루 종일 6명의 학우들과 수십 통의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은 뒤의 결론이었다. 자취를 하기로 결심하고, 기숙사 입사를 포기했다. 새로운 deadline이 생긴 것이다. 그날은 학회 논문 제출 D-7이었고, 동시에 봄학기 기숙사 퇴사일 D-10이었다. 당장 열흘 뒤에 내 몸을 뉘일 곳이 없었다.

단언컨대 살면서 가장 바빴던 8월. 휴가는 중요하니까 궁서체.


EP02. 집을 찾아서


    10일 새벽 3시, 연구실 라꾸라꾸 (간이침대)에 누워, 랜덤 룸메이트와의 두근두근 가을학기 동거를 생각하며 몸을 뒤척이다가 가족 톡방에 자취 선언을 했다. 마침 야간 근무 중이었던 아버지에게 곧바로 전화가 왔다. 전날 이리저리 방 재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이미 토로했기 때문일까, 기숙사에 살 수 있으면 최대한 그쪽으로 알아보라던 아버지도 방을 알아보라고 허락하셨다.

    방 구하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음날 연구실의 자취하는 동료들에게 물어보며 대충 주변 시세를 확인하고, 직방 앱을 통해서 조건에 맞는 방들을 탐색했다.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연구실과 거리가 가까울 것
2) 지출이 기숙사 (20만 원/월)을 크게 능가하지 않을 것
3) '숙식'이 아닌 '생활'이 가능한 환경일 것

의외로 기존에 갖고 있던 자취에 대한 로망은 크게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옛날부터 핀잔하듯 기숙사 생활을 한탄하며 "나도 집들이하고 싶다~ 술 먹는 아지트 갖고 싶다~" 말하곤 했는데, 나의 잘못으로 기숙사 신청을 놓치고 내쫓기듯 빠르게 집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 그저 부모님께 폐 끼치지 않도록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나마 3번 조건이 (반지하 방에서 숨 몇 번 쉬고 추가한 조건이긴 한데) 아무래도 기숙사를 떠나 첫 '내 집'을 구하는 만큼 잘 살 수 있는 곳, 잘 쉴 수 있는 곳은 되어야겠다는 나를 챙기는 마음에 비롯된 것이었다.

    논문 준비 때문에 많은 시간은 낼 수 없으니 후보를 줄이고 방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보증금도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 모두 해결하고 싶어서 월세를 중점적으로 알아보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전세 집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최근 전세 사기 사건도 많고 대출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금리를 따져서 지출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조건에서 확실히 전세 집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면이 있었다. 다만 전세를 하게 되면 내년에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일 없이 남은 대전 생활을 그 방에서 하겠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에, 결단이 필요했다.

전세살이를 허락해주신 아버지

    아버지의 동의에 힘입어 그날 저녁 바로 방을 둘러보러 공인중개사를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4000짜리 집은 이미 계약이 끝났고 5000이 넘는 집은 보여줄 수 있다고.. 하면서 보여주신 집이 그냥 여러 모로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1000만 원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맞을 수도 있음. 개가 참 귀엽네요, 이름이 뭐예요? 천만에요.), 그럼 다른 중개사 통해서도 조금 더 알아보겠다고 튕겼는데, 결국 다음날 그 집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계약금으로 전세가격 5%를 선입금하는 데에도 우리은행과 카카오뱅크 계좌에 있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야 했다. 공인중개사 사장님이 계약서와 등기부등본을 들이밀며 여러 설명을 해주시는 동안에 나는 어리숙함을 감추려 안간힘을 썼다. 마치 수산시장에서 기싸움하는 소비자처럼, 만만한 호구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져보았지만 결국 중요한 액션을 취해야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며 도움을 구했다. 여러 서류들을 챙겨서 부동산 사무실을 나오는데 만감이 교차하더라. 큰 일을 해낸 듯한 느낌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껴본 적 있습니까. 항상 내 경제관념과 현실 감각을 지적하던 아빠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존댓말을 써가며 감사하다는 말로 통화를 마쳤다. 평생을 학생의 신분으로 살아오다가 처음으로 사회 초년생의 삶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자취를 하면서 기숙사 생활에선 경험하지 못한 여러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관리비를 내면서. 그 모든 삶의 비용을 이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EP03. 안녕, 안녕.


   한차례 집 구하기 소동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학회의 D-day는 야속하게 매일 하루의 속도로 다가왔다. 제출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 아이디어가 기대만큼의 성능 향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당하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아이디어 자체는 설득력이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논문은 끝까지 완성하기로 했다. 결국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결과물이 나왔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꼭 이번에 합격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리뷰를 받아서 좀 더 당당한 성능을 갖추고 더 좋은 학회에 내면 될 일이다. 그래도 함께 논문을 준비한 저자들에게 미안함이 없도록 밤을 새 가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나중에 인스타 스토리를 돌아보며 확인해 보니, 8월 1일부터 16일 논문 제출날까지 중에 6일 밤을 꼬박 새웠더라. 거의 이틀에 한 번 잔 꼴이었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논문을 내고, 술을 먹는데 정말 신기하게 달았다. 직전날도 밤샘을 한 뒤여서 그랬는지, 한 잔을 마실 때마다 눈 밑의 피로가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처럼 토토토톡 터지는 느낌이 났다. 그걸 만끽하겠다고 국밥 한 그릇에 소주 두 병을 비운 나.. 정말 귀여운 것 같아.

인스타 스토리로 복습하는 8월의 히스토리

    서플 준비는 제법 수월하게 끝났다. 토요일 마감시간을 3시간 앞두고 모든 자료를 제출한 뒤, 기숙사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을학기 미입사자 퇴사는 사실 토요일까지 이뤄져야 했지만, 이사는 일요일에 부모님이 대전에 내려와 도와주시기로 한 터라 마지막 하룻밤만 방에서 있기로 했다. 냉장고를 동혁이에게 팔아넘기고, 대충 여름옷과 겨울 분류한 뒤, 잡동사니들을 정리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방에 보관 중이던 술병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고독한 대학원생으로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양주를 다양하게도 모을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공병이었지만 조금씩 남아있는 양주들을 그날 모두 처리해야 했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빈 병들아

    음악을 틀고 술을 마시며 기숙사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모든 것들이 괜하게 느껴졌다. 그냥 랜덤 룸메이트와 조금은 살아볼 걸, 괜히 당장 자취를 한다고 그랬나. 기숙사 좋은데, 일단 저렴하고, 공용 화장실 샤워실도 다 적응했고, 살기에 불편함 하나 없는데. 괜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기숙사 생활을 10년을 했다. 2013년 고등학교 입학부터 2023년 지금까지, 4인실 (~2015) -> 3인실 (2016) -> 2인실 (~2021) -> 1인실 (~2023) 점점 몸이 커지면서 이 작은 공간에 나를 채우는 비중을 높여나갔다. 지금 방에도 1년 반을 이어 살았네, 어떨 때는 저 천장이 관뚜껑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몸살에 걸렸을 때는 땀으로 눅눅한 이불 위에 누워 냉장고 웅웅 우는 소리를 들으며 종일  잠결을 매만지기도 했다. 학기마다 거처를 갱신해야 하는 정처 없는 생활이었지만 나는 이러한 삶에 익숙해졌다. 돌이켜보니 누가 뭐래도 나의 기숙사 생활 시절은 청춘, 꽃시절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에, 그 시절의 마침표를 찍는 듯한 기분에 소회가 남달랐다.

    간은 어느덧 새벽 3시였다. 그 전날에도 밤을 새운 터에 이사 준비까지 하느라 피곤할 만도 한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산책을 할 겸 나갔다가, 계약한 방에도 몰래 들어가 봤다. (잔금 입금은 아직 않았지만, 방 비밀번호는 이미 부동산에서 전달받았다.) 청소 잘 되어 있었다. 지난번에 보았을 때랑 침대 배치가 달라져 있었데, 이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텅 빈 방, 혹시나 불을 켜서 전기를 쓰면 내가 남몰래 다녀간 흔적이 남아 문제가 생길까 휴대폰 손전등만 켜고 매트리스 위에 앉아 텅 빈 방을 둘러보았다.

    저기에 컴퓨터를 두고, 저 찬장에 책을 넣고 이쪽에 또 새로운 술을 채워 넣어야지. 엄마가 소반 하나는 가져온다고 했으니까, 친구들 놀러 오면 바닥에 앉아서 먹으면 되겠다. 식기들도 좀 챙겨 오신다 했는데, 지금 내가 소금 후추 식용유는 있고. 버터나 사서 계란 스크램블 해 먹고 고기도 가끔 구워 먹어야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나의 새로운 거처의 헐벗은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은 또 기숙사의 풍경을 볼 때의 감회와는 달랐다. 생각해 보면 1인실과 다를 것도 없는 방인데,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막막함도 있었다. 짐을 들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직 내 집 같지가 않았다. house를 home으로 꾸며나가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것에서 오는 기대감과 무게감이 제법 먹먹했다.

    그래도 방에 애착을 붙일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휴대폰 조명으로 천장을 비췄더니, 신기한 벽지를 썼는지 알알이 빛을 반사하는 알갱이들이 있어서 별처럼 보였다. 기숙사 천장에도 야광별을 붙여놓았었는데 뭔가 연속성이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게 사진을 찍으면 별로 안 예쁜데 놀러 오시면 보여드리겠습니다.


EP04. 자, 취하자


    다음날 이사는 부모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순조롭게 끝났다. 학교랑 자취방을 서너 번 오가면서 짐을 다 옮기고, 빨래가 필요한 옷들은 부모님이 본가로 챙겨가셨다. 어차피 그다음주가 휴가가 있어서 부모님과 같이 집에 올라올까 했는데, 휴가 첫 일정이 부산 여행이라 그냥 대전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고로 지금은 부산이다. 부산역 도착하자마자 돼지국밥 하나 때리고 인생 꼼장어 먹고 술 진탕 마셨다. 지금은 바다 좀 보다가 맥도날드 와서 이 글 마무리 하고 있다. 바다 보며 글 쓰면 받아쓰기. 아직 숙취가 남아있어서 빨리 글 마무리 하고 모래밭에 묻혀있고 싶다.

    모쪼록 집이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손바닥만한 원룸이지만 조만간 조촐하게 모실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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