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4년 차, 첫 해외 학회 논문 합격 후기
... Reviewers believe that the paper provides valuable new ideas to the community.
심사자들은 이 논문이 학계에 귀중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AC(Area Chair) hence follows the consensus and recommends acceptance.
따라서 본 의장은 심사자들의 합의를 따라 'Accept(합격)'을 추천합니다.
논문이 붙었다. 합격 논문 목록이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주 금요일이었지만, 리부탈(rebuttal)을 검토한 심사자들의 2차 리뷰 및 의장의 메타 리뷰가 공개된 (작성일 7/18 기준)오늘에야 드디어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논문이 붙었다! 나도 이제 ICCV 1저자다!! ㅠㅠㅠㅠ
국제 학회 논문에 이름을 싣기까지 자그마치 4년이 걸렸다. 4년이 뭐야, 26년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연구실 홈페이지의 개인 논문 실적란에 한 줄을 추가하는 동안, 과장 조금 보태서 눈물이 날 뻔했다. 부사수의 국문 논문 2저자로 들어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21년도, 22년도의 논문 실적이 전무했다. 정말 그동안 내심 많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하나 논문이 붙고 나니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 잠깐만 하소연 좀 할게요.
2020년, 석사 입학 첫 해에 처음 쓴 국문 논문이 대한전자공학회에서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학회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지만 시상식을 빌미로 광주에서 열린 학술대회장도 다녀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제법 대학원 생활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단추를 나름 잘 끼운 편이니까. 그러나 그 후로 2년 동안 국제 학회에 1저자는커녕 2저자, 3,4저자로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석사로 졸업한 동기들은 탑티어 학회는 아니지만 국제 학회 1저자 논문을 하나씩 들고나가고, 함께 박사과정을 밟게 된 동기는 비록 억까로 떨어졌지만 탑티어 학회에 논문을 내고 좋은 리뷰도 받았다. 동기들의 선전을 보며 나도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는 동안 나보다 늦게 들어온 연구실 후배 형들도 (군필이라 나이는 더 많았다) 논문을 챙겨서 졸업을 했다. 6개월가량을 지도했던 개별연구생까지 '학부 수업 과제로 냈다'던 논문이 국제 학회에 붙었을 때는 그냥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논문도 없는 내가 감히 왈가왈부 조언을 했던 게 부끄러웠다. 사수 형이 좋은 학회에 붙었을 때에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드렸지만, 한편으로는 그 논문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나는 없느니만 못한 존재인 걸까'라는 생각에 몹시 서글펐다.
그동안 나는 무얼 했지? 서버 팀장을 1년 했고, 부랩장도 1년 했다. 7년짜리 과제를 4년 차에 물려받아서, 코로나를 핑계로 그동안 미뤄졌던 앱 제작과 데이터셋 수집을 마치고 중간 보고서까지 작성했다. 그러자 과제가 바뀌었다. 새로운 과제의 제안서를 쓰고, 그것이 붙자 과제가 바뀌었다. 이것 말고도 과제가 두 번 더 바뀌었다. (2년 동안 과제가 4번 바뀌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나는 바빴고, 연구 주제가 자주 바뀌었지만. 이것이 변명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대학원생은 논문 실적으로 말한다. 기본 6년 + 연장전의 대학원 생활을 생각해 봤을 때, 나의 전반전 (첫 3년)의 성적표는 국제 학회 기준 슈팅 5개 (1저자 투고 1개), 0골 0어시였다. 처참했다.
참여한 논문 중에 붙은 논문이 하나도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1저자 투고 횟수 자체가 3년 동안 딱 하나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올해 결국 저널 하나가 붙긴 했지만 (재작년 연말에 썼던 IEEE Sensors. 리뷰 프로세스가 1년 걸렸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회 시즌마다 결과를 내지 못한 채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작년 8월에 썼던 글 아임 파인 땡큐 -에서 준비했던 논문도 이를 악물고 성능을 뽑아보려 했지만 실패하여 결국 11월 학회에 내지 못했다. 결국 그 아이디어도 폐기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논문을 준비했다. (그 아이디어도 중간에 폐기했다.) 그렇게 필사의 각오로 준비해서 3월에 제출한 논문이 마침내... ICCV 2023에 accept 된 것이다.
하소연 너무 길었죠. 죄송합니당... 아래에 조금 더 있을 예정...
아래는 accept 소식을 들은 날의 일기.
학회 측에서 공지한 최종 결과 발표날은 7월 13일이었다. 우리에게 제출 관련 일정을 안내할 때는 23:59, GMT 이렇게 시간까지 칼같이 공지하더니 자기들은 그냥 넉넉하게 13일 중에 공지할게요~ 한다. 하하. 당연히 그리니치 표준시(GMT) 기준이겠거니 생각하고 9시간의 시차를 고려하여, 13일 아침부터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사실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 1차 리뷰에서 Weak Accept 두 개, Weak Reject 한 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학회 제출 경험이 적은 나로서는 이게 잘 받은 리뷰인지 확신은 없었지만, 연구실에서 두 번째로 높은 리뷰를 받기도 했고 주위에서도 미리 축하를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좋았다. 그래도 나보다 더 좋은 리뷰를 받고도 어이없게 떨어지는 일도 더러 있었다는 말을 들어서, 미리 김칫국을 먹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경건한 마음을 갖고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날은 교수님과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던 날이어서, 좋든 싫든 그전에 결과를 받아보기를 바랐었다. 최악의 경우는 교수님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reject(탈락) 소식을 듣는 것일 텐데, 그럼 아마 입에서 녹는 참치 회조차 목에 걸렸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국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도 결과 발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퇴근해서 경건하게 냉수로 목욕재계를 하고 잠들 때까지 기다렸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14일 오전 9시 전에는 나오겠지, 하며 그날 잠은 엄청 설쳤다. 근데 9시에도 안 나왔다. 이 자식들... 이쯤 되니 화도 나지 않아서 일찍 점심이나 먹었다. 시키고 보니 아뿔싸, 미역국이 있는 메뉴를 골랐는데 그냥 웃기더라. 떨어지면 미역국 때문이겠거니, 생각하는 내가 이미 해탈한 것인가 싶었다.
Accept 소식을 들은 것은 오후 두 시가 넘어서였다.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합격 논문 목록이 올라왔다길래 확인해 보니 내 논문 ID가 있었다. 분명 수없이 본 숫자였는데도 이게 현실인가 싶어서 공저자들의 축하 메시지가 올 때까지 계속 의심했다. 붙은 것이 확실해지자 정말 저절로 입이 귀에 걸리더라. 밖에서는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그대로 뛰어나가서 앞구르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세미나를 마무리할 때까지 들뜬 마음을 억눌렀다. 가장 먼저 전날부터 함께 긴장하고 계셨던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고, 연구실 사람들과 가볍게 축하를 나눴다. 교수님께도 감사 메일을 드렸다. 그리고... 그냥 자리로 돌아와 실험 결과를 확인했다.
응, 끝이었다. 전날에 결과 발표가 나올 줄 알고 미리 잡아두었던 저녁 약속에 나가기 전까지, 그냥 카톡방에서도 야호 몇 번 하고 하던 실험이나 마저 했다. 천지가 개벽하고 팡파레가 울리는 일은 없었다. 환호성이나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막 신나서 호들갑을 떨 수도 없는 것이, 연구실에는 논문 제출 했다가 떨어진 사람도 있었으니까. 제출도 하지 못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나도 그 중 하나였기 때문에...) 평범한 하루가 지나갔다. 전문연 근무시간 40시간은 이미 다 채워놓았기 때문에 일찍 퇴근을 찍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동아리 후배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먹었다. 그때 먹은 소주가 진~짜 맛있긴 했다. 녀석들과 헤어지고는 술이 아쉬워서 캔맥주를 두 캔 더 샀다.
우산을 쓰고 돌아오는 길에 하루를 돌이켜보다가, 마음이 호젓해져서 그늘에 들어가 술을 깠다. 4년 동안 나는 이 논문 하나 없어서 정말 오랜 시간 불안해하고, 때로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정말 실력 없는 대학원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거든. 그런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그런 자신감을 유지하는 것조차 자존심인가,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해내는데 왜 나만 못할까- 운이 나쁘다기에는 애초에 논문을 완성해서 제출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냥 나의 실력이 모자란 것이 맞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제 논문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변하는 게 딱히 없었다. 졸업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거 썼다고 당장 오늘 대학원 생활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나는 계속 논문을 준비해야 하고, 또 불안해할 것이고. 계속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당장 지금 준비하는 다음 논문이 붙으리란 보장도 없다. 앞으로 최소 2년 동안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것에서 오는 감정이 허무함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생각할수록 두근거렸다. 아아, 세상은 그대로라고, 대학원생의 고된 일상은 여전하다고 아무리 내게 이야기 해도 나는 이미 이 성취의 의미를 가슴 깊이 아는 것이다. 0과 1의 차이를. 한 번 했으니 또 할 수 있다. '드디어 해냈다, 끝났다'가 아닌 '이제부터 시작이다' 라는 생각이 나를 하염없이 들뜨게 했다. 전반전에는 0골 0어시였지만, 후반전 15분에 결국 골이 들어갔다. 여태까지는 '하나라도 할 수 있을까'였다면, 이제는 '졸업 전에 두 개는 더 넣자'로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막연한 불안감이 있던 자리에 분명한 열정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연구실에서 앞구르기를 하진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자축을 하자. 세레모니(ceremony)를 치르자! 벅차오르는 그 순간의 마음을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었다. 다시 논문을 내서, 더 좋은 곳에 붙더라도 그때의 기쁨이 오늘의 감정과는 다를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오늘을 더 오래 추억할 수 있도록 '사건'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미친 짓을 하기로 했다. 우산을 접어서 한 손에 쥐고, 신던 슬리퍼를 벗어서 다른 한 손으로 들었다. 무겁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맨발로 선비처럼 걸었다. 물웅덩이를 마주칠 때마다 피하지 않고 발을 첨벙이며 밟고 지나갔다. 오늘은 비바람이 불어도 움츠리지 않을 것이다. 젖었다고 찝찝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노래를 작게 흥얼거리며, 소심한 어깨춤을 추며 관객 없는 타령을 했다. 기분이 좋았다. 기숙사로 돌아와 곧바로 옷을 세탁기에 넣고 잘 씻은 뒤에 일기를 몇 줄 적었다. memorable한 밤이었다.
다음날 침수된 휴대폰 액정이 맛이 갔는데, 매트릭스처럼 초록색 줄무늬만 뜨던 화면에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얼룩처럼 뭐가 보이더니 하루가 지나니까 아예 살아났다. ㄷㄷ; 덕분에 토요일 아침부터 서비스 센터도 다녀오고 새 폰도 사고(...?) 했는데, 여러모로 그날의 미친 짓은 기억에는 깊게 남을 것 같긴 하다.
그래서... 10월에 학회 참여하러 프랑스 파리 갑니다. 사실 합격 소식 듣기 전에도 교수님이 준비 기간 때 밤 새우면서 고생하는 모습 보시더니 당락에 상관 없이 학회를 보내주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교수님의 배려가 없었어도 자력 진출(?)할 수 있게 된 셈이니 더 기쁘네요. ICCV가 뭔지도 모르는 분들께 이렇게 떠들기 민망해서 조금 자랑을 해보자면, 지금 인용수 지표 기준으로 공학/컴퓨터과학 계열 학술지 중에 5등에 드는 학회구요. 컴퓨터 비전 분야만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탑티어 학회랍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좋은 논문으로 인정 받아 인용 많이 받아야겠지만요... 모쪼록 잘 다녀오겠습니다. 닉값 잘 해볼게요!!
지금 또 8월까지 내야 하는 학회 준비로 바빠서 당장은 어렵지만, 10월 가기 전에 논문이 어떤 내용인지도 간단하게 소개하는 글을 써볼게요. 늘 대학원 생활 관련 글을 쓰려고 하다가도, '논문도 없는 게 이런 거나 쓰고 있네' 라는 자격지심에 항상 망설였었거든요... #citation 미안해.. 제 논문 소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 기쁩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늘 응원해 보내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