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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Jun 18. 2023

AI 연구자로 작가 되기

인공지능 연구 = 디지털 인문학?

     나에게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이 있다. 정확하게는 '출간작가'가 되고 싶다.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책을 서점에서 만나면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여태 썼던 시들을 모아다가 어떻게 조촐한 시집이라도 독립출판해 볼 수 있겠지마는, 그건 또 너무 멋이 안 사니까. 부끄럽지 않은 '자타공인' 작가가 되려면 일단은 충분한 가치와 필요가 있는 글을, 권위를 담아 전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때 도전해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별 쓸데없는 이야기 해봤자 팔리지도 않을 테니까.


    지도교수님이 책을 냈다. 번듯하고 명망 있는 출판사에서, 200쪽 분량이 넘는 진짜(!) 책을 출간하셨다.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과거에도 책을 저술하신 적이 있긴 한데, 단독저자는 처음이신 듯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그저 교수님의 자아실현의 산물이겠거니 (헉;;) 생각하며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막상 교수님께 직접 실물 책을 받아보았을 때 제법 만듦새가 괜찮아서 퍽 감명을 받았다.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워낙 바쁜 시기였어서 예의상 여는 글 닫는 글만 확인하려 했는데, 몇 장 읽어보니 또 부담 없이 읽을만해서 틈틈이 전체를 읽게 되었다.


인공지능 안전성에 주목하라 (김창익 著, 도서출판 홍릉)

    물론 홍보용 글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책은 표지에서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안전성(AI safety)에 대한 내용을 크게 4개의 주제로 나누어 그 개념과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견고성(robustness), 설명가능성(explainability), 의도부합성/정렬성(alignment), 그리고 환경친화성(environmental friendliness)이 바로 그것이다. 책의 구성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바로 AI safety에 대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AI 기술은 어떤 성질을 가져야 하는지, 실제로 AI는 어떻게 발달해 왔으며 어떤 구조와 작동 원리를 갖는지 1, 2장에서 서술을 충분히 했다는 점이었다. 그를 통해 AI의 학습 방법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위험성은 무엇인지, 우리가 AI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어떤 것이 있으며 따라서 "신뢰 가능한 AI"는 왜 중요한지 - 안전성에 대한 논의의 바탕을 탄탄하게 그려나갔다.

    이걸 왜 강조하냐면, 사실 요즘 인공지능 관련 책들이 엄청 많이 나오는데 막상 펼쳐보면 크게 실속이 없는 경우가 많다. ChatGPT, 알파고 같이 대중에게 익숙한 키워드를 제목에 넣어서 세간의 관심에 편승한 다음, "인공지능이 미래다." "인공지능을 이렇게 쓰면 부자가 된다." 이런 뻔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서 '잘 팔리는 것'이 목표인 책들이 절반이고, 무슨 포토샵/파워포인트 자격증 교재처럼 Pytorch, Tensorflow 같은 AI에서 사용하는 프레임워크에 대해서 어떤 저자의 목소리 없이 정보나 지식 전달에만 집중하는 책들이 나머지 절반이다. 한편 이 책은 작가가 생각하는 중요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담백하게 풀어나간다. 제목도 만약 "인공지능, 위험성에 주목하라"라고 자극적으로 내놓았으면 오히려 대중에게 더 많은 눈길을 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현업에 종사하는 전문가의 책답게 현재 AI 기술의 성취와 한계를 기술적으로 다루면서, 문제점과 함께 그것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안전한 AI의 미래'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하자면 그냥 서점에 널려있는 상업적인 책들보다는, 저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정성과 노력을 담아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완전 문외한조차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대중친화적으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추가적인 참고 자료 없이도 충분히 그 내용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마치 저널처럼) 짜임새 있고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다. 물론 나는 관련 분야 대학원생이라 더 이해가 수월하기는 했다. 우리 연구실의 주력 연구분야인 적대적 공격(adversarial attack)과 관련성이 높은 견고성 챕터는 꽤 심층적으로 내용을 다루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또 강의용으로 사용하는 전공 서적처럼 부담스럽게 접근하지도 않는다. AI safety에 대한 개념을 갖추는 데에는 부담 없이 읽어도 충분히 유익한 책이 아닐까 싶다.


    ...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지만, 홍보용 글은 아니다. 뭔가 그런 것 치고는 아주 입마르게 칭찬을 하고 있는데, 절대 교수님이 시켜서 쓰는 책 광고는 아니고 오히려 교수님이 우연히라도 이 글을 (내 브런치를) 발견하실까봐 겁나는 편에 가깝다. 우리 교수님 책이니 차마 돈 주고 사라고는 못하겠고, 그래도 가까운 도서관이 있다면 구입 신청해서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아무튼 진심으로, 원고를 책으로 출간까지 많은 노력이 들었을 텐데 결국 좋은 책을 세상에 내놓은 교수님의 성취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맨 앞에 말했듯이 작가가 되는 것이 버킷 리스트 상단에 있는 나로서는 더욱이 큰 성취로 다가온다. 베스트셀러에 올라간 책은 아니지만 여전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저자의 전문성과 권위를 담아 발표한 책이니 말이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글로 대중과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인공지능이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뇌를 모방하여 만든 딥러닝 모델인 만큼, 인공지능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은 곧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로도 이어진다고 믿는다. (카이스트에 "디지털인문학부"가 새롭게 생겨서 대학원 과정도 만들어진다고 하던데, AI 연구가 진짜 디지털 인문학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봤다.) 더욱이 몇 개의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인간의 역량을 넘어서버린 지금,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높아진 주목도 만큼이나 그 중요도도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공포는 무지로부터 나온다. 인공지능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 우리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보며 활용해야 하는가- 이러한 내용을 대중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대중들만 AI를 어떤 인문학의 한 분야처럼 접근하며 친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도 인공지능을 설계함에 있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철학이 필요하다고도 생각이 든다. 교수님이 책에서도 강조한 "AI 의도부합성"- 쉽게 말해 인간이 설계한 의도대로 행동하며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AI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말하자면 "AI 도덕 교육"이 있어야 한다. 습득력이 빠른 천재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으로 어떤 정보에 노출시킬 것인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떨 때 훈육할 것인가,
 이러한 가치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공학자들과 철학자, 정책 설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AI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을까.


    그러한 미래에서 나 또한 어떤 모습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언젠가 인공지능 관련 책도 쓰고 싶다. 개인적으로 시집보다 이런 쪽으로 책을 먼저 내는 게 커리어 상으로도(?) 멋있지 않을까 싶음. 그러려면 일단 좋은 학회 논문의 제1저자부터 출발해야겠지. 매번 논문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말만 하고 정작 논문 됐다는 소식은 전하지 못해 민망할 따름인데, 정말 조만간 좋은 소식 들고 올 수 있도록 분발하겠습니다. 응원 부탁해요.


오늘 글 썸네일인데, "The future"라고 쓰고 AI 생성 모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했더니 꽤 감동적인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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