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방황과 1년간의 정착, 하지만 고민은 계속된다
AI로 인해 순식간에 직장을 잃었다. 그 이후 약 4개월간 고정 수입이 없이 간간이 들어오는 프리랜서 번역이나 일을 하면서 근근이 버텼다. 만약 하던 대로 번역 일을 다시 구하려 했다면 구할 수도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이 업계 자체가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과, 그렇다면 하루라도 빠르게 피벗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번역 일로 돌아가는 것은 내 커리어의 유통기한을 당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I에 대체된 이후 나는 온갖 AI관련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AI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인간을 따라잡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때부터 직업을 바라보는 기준이 완전히 변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전 나의 기준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내 캐파에서 가장 많은 페이를 지불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당장 대학원비를 벌어 내야 했던 상황과, 작가로서의 생활을 병행하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AI로 대체된 이후 나의 기준은 '이 직업이 대체 불가능한지'가 최고 순위가 되었다. 그렇게 두고 보니 직업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전문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더 대체 가능성이 높고, 인간의 육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 대체 가능성이 훨씬 낮다. 언젠가는 나도 기술을 배워야 한다. 현재까지는 미루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 후보로 장례 지도사와 같은 일을 어렴풋하게 고려하고 있다. 결국에는 대면 서비스직이 중요할 것이다.)
일단 현재 나의 능력 안에서 최선의 피벗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획 쪽으로 피벗을 하고자 했다. AI의 최대 강점을 발휘할 때는 어떤 포맷이 정해졌을 때, 그것을 그 규칙에 맞게 정교화하고 정돈하는 일이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포맷' 자체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 아직 인간이 더 필요한 일이다. 또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AI가 있더라도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랬을 때 내 능력상 손을 뻗을 수 있는 부분은 기획이었다.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뿌리고 면접을 보았다. 그러다가 한 회사에 행사 기획 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봉급은 짰다. 하지만 그것 또한 예상하던 바였다. 피벗을 하면 당연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2024년은 가혹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1년이었다. 마침내 피벗에 성공했구나, 이제는 조금 안정적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던 나는 7개월 정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바로 다른 행사의 출판 담당으로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고, 계약 종료 후 바로 브랜딩 기획으로 다른 회사에 입사했다. 단 한숨도 쉬지 못했다.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거의 송사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인생에 송사란 없는 것이 낫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마음도 몸도 다 닳았다. 그러다 12월, 헤드헌팅으로 현재 회사에 에디터로 입사하게 되었다. 컨설팅 회사였다. 인력 회사다 보니 봉급이 좋았다. 일을 빠르게 배우고 적응했다. 내 글이 내 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글 쓰는 일 외의 것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전에는 '정성적' 성과만 냈었다면, 이제는 '정량적' 성과를 볼 수 있었다. 내가 기획해서 진행한 시리즈 기사 중 하나는 1천만 뷰, 3개 시리즈를 포함하면 2천만 뷰라는 성과를 냈다. 시인으로서, 소설가로서, 시각예술 작가로서 볼 수 없었던 수치였다. 어쩌면 내 생에 첫 정량적 성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업실도 얻었다. 작업실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인다.
'그렇게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라고 보일 수 있는 결과 속에서 내 마음은 더없이 끔찍했다. 훨씬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전 몇 년간보다 사실 더 힘들었다. 일단 나는 너무 지쳤다. 피벗을 한다고 3번 이직을 한 2024년, 나의 능력을 증명해 내기 위해 애쓴 1년. 이 2년간 나는 급격하게 늙은 느낌이다. 처음으로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꼈다. 또한 한편으로 내가 하는 이 일 또한 언젠가는 대체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 또 피벗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이 지치는 일이었다. 또한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글이지만, 내 글이 그렇게까지 가치 있는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1년간 연차도 제대로 못쓰고 회사를 다녔다. 연차 소진을 위해 4일간 연차를 연달아 쓰고, 잘 알지도 못하는 하코다테에 무작정 비행기표를 샀다. 그리고 4일간 완전히 회사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쉬었다. 그러고 나니 분진처럼 날리던 스트레스가 가라앉고, 나라는 사람을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평생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기 계발에 대한 유튜브도 조금씩 봤다. 전에는 '그건 네 생각이고.'라는 마음에 자기 계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마음이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은 비슷한 고통과 비슷한 실패, 비슷한 힘듦을 가지고 있을 텐데, 저 사람은 그걸 어떻게 다스렸을까? 이게 궁금했다. 2024년 송사를 겪으며 공황 증세가 생겨 꾸준히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증상에 대한 처방 이상으로 나의 인지 구조를 바꿀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나의 고통에 매몰되어서는 살아갈 수 없다.
잘 쉬고 복귀하고 나니 전과는 달랐다. 그제야 나는 쉼에 대해서 깨닫는다. 사람은 쉬어야만 한다. 쉬고 나니 내 삶에 대해서 또렷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을 잊지 말기 위해 다음 편은 그 순간에 대해서 좀 적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