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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페이커를 존경하는 마음

당신이 존경하는 인물은?이라는 질문에 '페이커'라고 답한다.

by 김산

젠장, 또 대상혁이야. 기습숭배를 시작하지- 뜬금없이 페이커 이야기가 왜 나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페이커를 존경한다. 원래는 팬심에 가까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하지만 존경한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좀 더 분석적으로 이 사람의 어떤 면모가 존경스러운지에 대해서는 구체화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고는 하루는 찬찬히 앉아서 이 사람의 어디가, 왜 존경스러운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공인의 삶을 뜯어보는 것은 정성적 측면에서의 측정은 어렵다. 그들의 실제 성격이나 행동은 편집된 부분만 노출되고, 개인적인 부분은 알 방법이 없기에 추측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성과 지표는 공공연하게 노출된다. 그래서 명확한 성과들과 조각조각 그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단 페이커는 명실상부 챔피언이다. 25년, 전례 없는 쓰리핏과 총산 6승을 한 기록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페이커는 프로게임의 역사 그 자체이다. 페이커의 이러한 업적은 존경의 영역을 초월한다. 이는 넘을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고, 팬으로서 열광할 영역이다. 처음 롤판에 등장할 때부터 엄청난 재능으로 바로 정상의 자리에 섰던 페이커. 그런 부분은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범주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보기 시작한 것은 2022년도부터였다. 과거 월즈 우승 이후 한참 동안 우승 소식이 들리지 않다가 T1의 로스터가 완성되고 좋은 성적을 내면서, 과거 우승 후 앞 구르기를 하던 그 모습이 떠오르며 다시 그때의 영광을 그가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그 해의 모든 기운은 DRX에게 모였고,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월즈 우승 서사를 만들어냈다.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전혀 기대받지 않았던 팀이 월즈라는 꿈의 무대에서 모두가 기대했던 우승 후보를 꺾고 우승을 하는 이런 기적적인 이야기를 눈앞에서 보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웠던 동시에, 페이커의 마지막 우승 기회가 꺾였다는 마음에 안타깝기도 했다. 팀원들이 결승에서 진 후 오열하는 것을 지켜보는 페이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꺾였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이런 내 섣부른 결론이 틀렸다고 페이커는 보기 좋게 비틀었다. 2023년, 한국에서 개최된 월즈 4강 유일한 한국 팀 T1, LPL 팀을 모두 꺾어야만 우승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T1은 마침내 우승했다. 정말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성불하고 끝나지 않았다. 2024년, T1은 리핏을 달성한다. 이렇게 결론만 보면 간단한 한 줄이지만, 경기 내용들을 보면 매번 쉽지 않았다. 그리고 2025년, T1은 쓰리핏을 달성한다. 역시나 월즈 우승까지의 여정은 험난했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팬으로서도 매번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3년간 결론은 T1 월즈 우승이었다. 스포츠라서 가능한 놀라운 이야기이다.


정점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배울 거리가 있다. 재능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실함과 노력을 볼 수 있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최고의 위치에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페이커의 이야기에서 감명 깊었던 것은 그의 멘탈리티이다. 천재적 능력과 노력으로 최고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부진과 하락세를 겪으면서도 다시 그 자리로 올라가는 것은 다르다.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자세도 바꿨을 것이고, 방법론을 바꿔도 보았을 것이고 모든 것들을 해 보았을 것이다. 우승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지만 전의 우승과 지금의 우승은 다른 우승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 수반되는 부단한 노력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타인들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 시선들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다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그가 다시 비로소 그 우승을 쟁취했을 때 증명된 것이다. 22년도와 23년도를 거치며 나는 그 의지를 보았던 것 같고, 내 삶에 비춰 보았던 것 같다. 모두가 언젠가는 맞이할 인생의 하향곡선 앞에서 나는 반드시 반등할 수 있다고 내가 나를 믿어줄 수 있을까? 페이커는 말한다. 할 수 있다고.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나는 페이커의 멘탈리티를 존경한다고 말할 것이지만, 24년도와 25년도를 거쳐 오며 나는 그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승리도 승리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인터뷰에서도 페이커는 재미있는 경기였다, 재미있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담대한 마음가짐은 큰 무대에 갈수록 빛을 발한다. 큰 무대일수록 당연히 떨리고 중압감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즐기는 마음가짐은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확률을 높여준다.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 보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야를 넓게 가져라. '미안할 건 없고, 심호흡 한 번 해.'라는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심호흡이란 엇박으로 벌렁거리는 호흡을 다시 가다듬는 것이다. 그렇게 심호흡을 하고 나면 전체 경기가 보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 경기장과, 경기를 하고 있는 내가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은 결과와 별개로 아주 멋진 곳일 것이고, 아주 흥미로운 게임일 것이며, 그것을 플레이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일 것이다. 더 멀리 보자면 인생의 한 순간이고, 분명 아주 멋진 순간일 것이다. 결국 '크게 보라'라는 말이다. 이런 멀리 보는 페이커의 멘탈리티를 존경한다. 그의 재능을 따라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마인드와 자세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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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기의 자세를 가지고 내 삶을 한번 돌이켜 보자. 인생을 한번 게임에 빗대 생각해 보자. 회사 생활의 매니저가 바뀌고 동료가 나가고, 작업은 뜻하는 대로 풀리지 않고, 몸도 아프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근시안적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앞의 고통에만 사로잡힌 나. 당장 눈앞의 것들은 고통으로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게임으로 한번 돌려서 생각해 보자. 사이즈가 큰 프로젝트를 한타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고, 레이드라고 ㅅ생각할 수도 있다. 각 포지션별로 누구는 탱커, 누구는 딜러, 누구는 이니시를 걸 것이다. 한타가 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피드백을 하고, 어떻게 개선할지 이야기하면 된다. 만약 역할이 맞지 않는 것이었다면, 다음 게임에서 다른 역할을 하면 된다. 결국 회사 생활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협동하는 구조에서 게임과 비슷하다. 그리고 결국은 그 목적이 넥서스를 깨는 것이지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것 넘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은 나라는 점이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삶의 상념들이 한순간 잠잠해지며 꽤나 재미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중요한 것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즐거운 일일 것이다.



순간순간에 매몰되지 말고, 심호흡을 하자. 더 깊게 멀리 나를 호흡으로 보내자. 그래야만 비로소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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