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시작하며

by 다온JIN


인구구조의 변화와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돌봄’*이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돌봄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에서 ‘돌보다’는 보살피고, 보호하고, 양육하고, 잘 지내도록 살피는 행위를 말한다.
사회복지 정책에서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신체적·정서적·사회적 지원을 제공하는 모든 활동, 더 나아가 가족이 맡아오던 돌봄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서비스의 총체로 정의한다.

WHO와 OECD는 돌봄을 삶의 기능을 유지하고, 신체·정신·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지속적·상호적 지원으로 보고 있다.


정의도 어렵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이 ‘모든 활동’이 어디까지인지 더더욱 명확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며, 각자의 생애사가 있고,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욕구와 가치관을 가진다. 그래서 돌봄은 원칙적으로 획일적인 서비스로는 결코 완전하게 충족될 수 없는 개별성의 영역이다.


맞춤형 복지, 찾아가는 복지가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렵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 속에서 우리는 결국 일률적이고 표준화된 돌봄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어르신과 장애인의 돌봄은 가장 손쉬운 방향인 요양원, 병원 시설로 향하기 쉽고, 지역사회 내 개별적 케어는 늘 이상적 목표로만 남는다.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될 ‘의료요양통합 돌봄 지원사업’ 또한 결국 같은 물음을 던진다.


집에서 돌봄을 제공하겠다는 아름다운 목표는 분명 필요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정말 그 사람이 살던 곳이, 그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편안한가? 안정적인가? 안전한가?
혹은 그 집이 사실은 외로움과 상처가 쌓인 공간은 아니었는가?

우리는 당연하게 “집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을 이상적으로 말하지만, 정작 그 집이 어떤 집인지는 충분히 묻지 않는다.


나는 이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의 돌봄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유난히 서먹서먹한 편이다.
자매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고, 전화가 오면 반가움보다 부담이 앞선다. 부모님도 자주 전화를 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 가족들이 하루에 한 번씩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는 그 반대편에 가까운 가족이다.


우리 사이에는 오래된 벽이 존재하고, 나 역시 그 벽 안에서 살아왔다.


시간이 흐리고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조금씩 가족으로 향한다.


이 벽을 조금씩 허물어보고 싶었고, 우리가 앞으로 남은 삶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무심코 듣고 지나쳤던 말,
“핏줄이 당긴다”는 말이 이제야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지만, 그래도 끝내는 남보다 가족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오래된 가치관이든,
나는 여전히 **내가 가장 지키고 돌봐야 할 사람은 ‘우리 가족’**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가족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그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가족 리빌딩 프로젝트, 그리고 가족 돌봄에 대한 나의 이야기다.


아들만을 기다리던 부모님의 바람 속에서 셋째 딸로 태어난 나는, 어릴 적부터 늘 어딘가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감정의 결을 세심하게 살피며 건네는 돌봄이 우리 가족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바빴고, 나는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줄도 모른 채 성장했다.

세월이 흐르며 우리 가족은 네 갈래의 삶으로 흩어졌다.
고령으로 돌봄이 필요한 부모님, 장애아를 양육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작은언니,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큰언니,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나.
함께 살아도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 각자가 고립된 섬처럼 버티던 시간이 길었다.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상처를 준 적은 없지만, 치유된 적도 없었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도 돌봄을 나누는 방법을 몰랐던 우리는 침묵 속에 오래 머물렀다.


이제 나는 그 침묵을 천천히 걷어내려 한다.


돌봄을 다시 배우고, 관계를 다시 짓고,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집’이다.


오래된 시골집 한 채.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누구의 아픔도 어둠 속에 방치되지 않는 공간.
우리 가족이 다시 숨을 고르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집.

이 글은 그 집을 짓는 이야기다.
벽을 세우는 과정뿐 아니라, 마음의 벽을 허무는 과정까지 담고자 한다.
비록 자금은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의 설계도를 그려가보고자 한다


돌봄을 다시 쓰고, 가족을 다시 세우는 일.
이것은 거창한 재건축이 아니라,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한 작은 리빌딩의 시작이다.


늦게 빛나도 괜찮다.
우리는 결국 서로의 빛으로 돌아오는 가족이니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