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앞에서 조심
아이들과 경제활동 프로젝트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남은 모의 화폐로 물건 경매를 했다. 잔액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미리 주고 몇 번이나 예고했음에도 그 녀석은 자기 일에 정신이 없었다. 그 녀석의 일이란 다른 친구들의 필통을 순식간에 가져가 다른 아이에게 돌리며 킥킥 대는 일, 아니면 돌돌 만 종이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튼튼한 막대를 만들고 책상에 힘껏 두들겨 소음으로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일이었다. 수업에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 녀석은 1학기 동안 나와의 규칙을 제법 잘 지켜주고 있었지만 이날은 녀석의 행동이 좀 거슬렸다.
남은 화폐를 칠판에 적어놓고 물건 경매가 들어갔다. 시작하자마자 녀석은 자신의 잔액이 다른 친구들보다 너무 적다는 걸 인식했다. 그러면서 잘못 계산한 것 같다며 손을 든다. 이미 예고를 했음에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녀석에게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경매를 시작하자 아이들의 수요가 몰리는 물건값은 치솟는다. 녀석이 전액을 쏟아부어도 그걸 넘는 금액이 나오자 번번이 경매에 실패하는 녀석의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 짜증이 섞인 아이의 굵은 목소리는 가시가 돋친 말들을 뱉어냈다.
그만해! 아직 기회는 많아. 기다려봐.
기본적으로 참을성이 없는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였나? 다른 아이들이 돈을 다 쓰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얻은 아이는 원하는 물건을 얻었다. 하지만 감정이 상한 아이는 그날 급식 줄을 서지 않았다. 교실에 녀석을 남겨둔 채 아이들과 밥을 먹고 돌아왔다. 시간이 약이라 생각했기에.
그러고 두 시간 수업이 더 있었고 집에 갈 시간. 교실바닥에서 빨간 쪽지를 주운 아이가 누구의 것인지 펼쳐보았다. 십 원짜리 욕이 적혀있었다. 아이는 이 색종이의 주인이라며 그 녀석에게 쪽지를 주었고, 녀석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발뺌했다. 약간 당혹스러운 눈빛이었다. 가져오라 했다. 분명 글씨는 녀석의 것이었지만 나는 추궁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 지목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니 일단 다음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전체적으로 이야기했다. 분명 점심시간에 자신의 화를 풀기 위해 녀석이 그랬으리라. 화를 푸는 방법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어쨌든 지쳤다. 아이들을 보내고 잠시 연구실에서 한 숨 돌리는데 동학년 선생님들이 들어오신다. 회의를 하는 중 넋두리처럼 녀석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 빼고는 모두 남자 선생님들이다. 그래, 내가 그걸 또 잊었다. 남자들의 언어와 여자들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일관성 있게 대해야 합니다. 규칙을 정해서 눌러야 합니다. 등등의 문제 해결에 촉을 올리며 이야기를 끌고 가시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 녀석에게 휘둘리며 맘 상한 교사가 되어 있었다. 두 분이 보시기에 아이들에게 너무 허용적이라 보신 것 같다. 거의 교실붕괴의 수준으로 나를 보시는 선생님들 앞에서 지친 마음에 소금을 뿌린 것 같이 아팠다. 공감을 원했지, 문제 상황을 파악하거나 해결해주라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그날 저녁 나는 세 아이를 데리고 밤늦게 차를 운전해야 할 일이 있었다. 혹시나 차에서 잠이 들까 싶어서 "엄마, 눈이 깜깜해서 밤에 운전하니 길이 잘 안 보이네. 어디로 가야 하지?"라고 했다. 아이들은 내비게이션의 길을 보며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엄마, 조금 있다가 오른쪽이야. 아니 아니,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니까. 말 잘 들어야 돼. 알았지?
흥분된 목소리로 나를 지도하시는 세 남자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왔으나 남자들에 둘러싸인 내 신세가 갑자기 슬퍼진다. 나도 조용히 카페에 앉아 공감과 소통이 있는 대화를 좀 하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