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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솔 Mar 26. 2017

남해의 봄

하늘이 파랗다. 실바람이 싱그럽다.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봄 햇살 속에 꽃비는 산 정상을 향해 비상하고 희망과 재생의 열기가 온 대지를 물들인다.

땅 위의 봄이 연초록 실루엣을 토하면 봄의 여신은 하늘빛을 품은 물감을 바다에 풀어놓는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 바다색의 합창이 하모니를 이루어 강진만을 지나 앵강만을 물들이고 동대만에 유채색 봄 물결을 수놓는다.

일찍 요절한 시인 이장희는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꽃가루같이 부드러운 고양이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우러지도다”라고 읊었다.


봄!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들이 요동하는 계절이다. 작년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출퇴근길일 때 봄의 정경은 겨우 앞산 산허리를 분홍빛 투명 물감으로 물들이는 정도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근무지가 옮겨진 지금 반 시간 남짓 가는 출근길은 다양한 산과 들, 바다와 어우러진 보물섬의 봄이 눈을 황홀캐 한다.

남해는 따뜻한 곳이다. 그런 만큼 다른 지역보다 봄꽃의 개화시기가 빠른 편이다. 삼월 중순 아침 아직 찬 기운의 여운이 가시잖은 읍내를 벗어나 입현마을 고개를 넘는 순간 아기 손바닥 같은 새하얀 목련들이 도로 양편에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봄의 왈츠를 선물한다. 선물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지막이 들리는 봄의 흐름을 배경으로 윤기를 더하는 마늘밭의 출렁임, 개화를 위한 힘찬 성장의 똬리를 풀고 있는 장평 소류지의 튤립, 개나리, 벚나무들! 탈 박물관 앞의 노란 꽃등을 밝힌 산수유와 자목련의 뜨거운 입김이 만개한 냉이꽃들과 어울려 앵강만을 아우른다.

어둠을 밀어내고 봄의 비밀을 밝혀내는 태양신! 그 자연조명은 부드러운 꽃 이불에 덮인 채 새근거리는 앵강 다숲마을과 앵강만을 열어젖힌다. 바다와 어우러지고 봄을 휘감은 비단 치맛자락이 담긴 봄 바다 누가 보아도 한 폭의 그림이다.


봄은 길 따라 오는 것일까? 태양 그 따뜻함의 장난일까? 봄의 넘침은 펼쳐진 길을 동맥처럼 흘러 그 열정을 동백꽃에 담는다. 시인 변영로는 논개의 정절을 강낭콩 꽃보다 더 붉다고 하였지만 그 붉음을 저기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에 비교할 수 있을까? 빨간 꽃잎을 몇 겹으로 두르고 황금빛 비밀을 지키려다 끝내 이루지 못한 설움이 ‘툭’ 포도 위에 붉은 눈물로 떨어진다. 그 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도로변 가장자리에서 며칠째 온기가 가시지 않은 붉음이 봄볕에 갈무리 되고 있다.

봄! 

얼마나 좋길래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에게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호주머니에 돌멩이만 잔뜩 집어넣고 강물에 뛰어들었을까? 

그녀는 봄의 집요한 깊은 유혹에 감성을 불사른 것이 아닐까?

금산 아래의 봄! 그 봄에는 여유가 있다. 진분홍빛 진달래가 화들짝 웃고 손바닥만 한 논배미 옆 둠벙에는 또 하나의 작은 봄이 소란거린다. 이쯤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시간을 정지시키고 싶다. 고개를 돌아내려 온 봄은 인기척 드문 촌 가의 대문에 선다. 흐드러진 왕벚꽃이 검문을 하고 고개를 내밀어도 마당에는 멍멍이 혼자 고삐 풀린 시간을 지키고 있다.


보물섬의 봄!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멀어지는 자연의 조화에 굳이 야단법석할 까닭은 없지만, 삼월에서 사월로 가는 봄은 정말 혼자 보기 아깝다. 

굳이 멀리 매화를 보러 산수유 꽃을 보러 다리품 시간을 팔지 않더라도 짙어지는 남해의 봄을 길 따라 섬 따라 거닐며 취해보는 것도 참 좋을 일이다.

사월의 봄은 좀 더 빠를 것이다.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올리브 빛 봄들이 앞을 다투어 산 정상으로 활엽수들의 가지 끝으로 달음질하며 매달릴 것이다.

그 봄 이렇게 눈부신 향기로운 미풍 속에서 희망과 재생의 의지를 다지며 사랑하는 사람과 봄냄새를 맡으며 함께 해 보면 어떨까? 따스한 사람들의 미소가 꿈꾸는 천상의 행복이 남해대로 변 곳곳에 스며 있고 손만 뻗치면 가슴에 휘감겨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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