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아예 모르지는 않으므로 '잘'이라는 부사를 사용했다. 그의 책 두 권을 알기 때문이다.
한 권은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책이고, 또 한 권은 《일방통행로》이다.
위키에 나온 발터벤야민의 정보 첫 줄은 이렇다.
발터 벤야민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게르숌 숄렘의 유대교 신비주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또한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도 관련이 있다.
또, 그의 책 《일방통행로》에서는 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베를린의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시적 상징성과 비의성, 멜랑콜리, 알레고리적 사유 등으로 빛나는 글쓰기를 통해 '20세기의 가장 빼어난 산문가'라는 영예를 얻고 있다.
『독일 비애극의 원천』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교수 자격 논문을 제출했으나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그가 왜 그런 평을 받았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책 《일방통행로》에는 『아침 식당』이라는 에세이가 실려 있다. 아래는 그 에세이의 전문이다.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한 이야기는 아침 식사 전에 꿈 얘기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한 상태의 사람은 이제 막 작에서 깨어났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꿈의 세력권 안에 붙잡혀 있다. 즉 세면은 단지 몸의 표면과 눈에 보이는 운동기능을 밝은 빛 속으로 불러낼 뿐이며, 그에 반해 몸의 가장 깊은 층에서는 심지어 아침에 몸을 청결하게 하는 동안에도 꿈의 회색 어스름이 그대로 머물고 있다. 아니, 그것은 막 잠에서 깨어난 고독한 1시간 동안 한층 더 단단해진다. 대인 공포증 때문이든 아니면 내적인 평정을 위해서든 낮과 접촉을 피하려는 사람은 아침 식사를 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것을 소홀히 한다. 그런 식으로 밤의 세계와 낮의 세계 사이의 단절을 피하는 것이다. 그려한 종류의 조심성이라면 기도가 아니라면 집중적인 아침 일을 통해 꿈을 연소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체 리듬의 혼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절반은 꿈의 세계와 결탁하고 있으면서도 말로는 그러한 세계를 배신하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로부터의 복수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현대적인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배신한다. 그는 이제 꿈꾸는 순진함의 보호를 받을 때는 지났으며, 우월감 없이 꿈의 표정들을 건드리면서 자기 자신을 넘겨주게 된다. 오직 저쪽 강둑, 즉 밝은 낮이 되어야만 기억이라는 우월한 입장에서 꿈에 대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의 저쪽에는 몸을 씻는 것과 유사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정화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침 식사 전의 공복 상태에서 사람들은 마치 잠 속에서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꿈에 대해 말한다.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아침 식당 중에서
"몸과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는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는 간단한 말을 이렇게 길고 심오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재능이다.
이 짧은 산문 안에 "꿈 = 비이성적인 힘과 진리" "낮 = 이성적이고 근대적인 삶"의 철학적 구조를 제시하고, 그것을 "밤, 낮, 빛, 회색, 꿈, 기억, 배신, 복수, 정화"라는 대립쌍을 이용해 환유하여 강력한 아포리즘을 구성한 것에 대해서는 글쟁이로서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이 글을 썼다면 "아침에 배고플 때 말하면 헛소리 하기 쉽다."라고 한 줄로 끝내버렸을 것이다. 효율과 철학적 사유는 양립할 수 없는 극단에서 서로에게 닿지 않는 설득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근대 이성이 만들어낸 최단 경로의 사유는 발터 벤야민에게는 폭력적인 질서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우리가 벤야민만큼이나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중요한 파편적 사실들과 비이성적 진실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한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그를 그야말로 '유격전'속에 몰아넣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벤야민은 그 격전 속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논리의 속도를 거부하고, 이미지와 기억의 속도를 따른 글쓰기로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인 서술 방식을 통해 낮의 이성이 억압하고 배제했던 밤의 진실을 꺼냈다. 벤야민은 그 위대한 승리의 문장을 통해 본질의 체험과, 체험에 따른 울림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