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로맹 가리의 위키피디아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음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를 맹신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반성하면서도, 놀라웠다.
이에, 내가 직접 '정식 출판물에 담긴 정보'만으로 로맹가리의 연보를 작성하겠다.
1914년:
5월 21일 모스크바에서 출생, 본명은 로만 카체프(Roman Kacew), 어머니 니나 보리스프스키야(Nina Owczyńska) 배우, 아버지 모름 (로맹 가리의 출생 직후 이혼), 유태계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917년(3세):
모스크바를 떠나 리투아니아로 이사
19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927년(13세) ~ 1932년(18세):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 니스에 정착.
1933년(19세): 『죽은 자들의 포도주』 투고 (가명: 뤼시앵 브륄라르)
1933년(19세) ~ 1939년(25세):
엑상프로방스와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연수받음
1935년(21세):
『그랭구아르』에 단편 「폭풍우」 게재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939년(25세):
'자유 프랑스'공군으로 복무
1941년(27세):
불가리아 주재 서기관으로 근무, 어머니 약물과다복용으로 자살 (그러나 로맹가리는 이 사실을 몰랐다. 어머니가 그에게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1945년 9월 2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어머니의 죽음 알게 됨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죽기 전 아들에게 보낼 편지 250여 통을 쓴 후에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달라며 친구에게 정기적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싸우고 있는 아들에게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 니나의 친구는 모든 편지를 정기적으로 친구의 아들인 로맹 가리에게 성실히 전송한다)
1944년(30세):
첫 소설책 『유럽의 교육』이 런던에서 『분노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보그』지 편집자였던 일곱 살 연상의 레슬리 블랜치(1904~2007)와 결혼
1945년(31세):
종전 후 레지옹 도뇌르 훈장 받음, 『유럽의 교육』 프랑스 출간.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 수상
1946년(32세):
『튤립』 발표
1948년(34세):
『커다란 탈의실』 발표
1952년(38세):
『낯의 색깔들』 발표
1956년(42세):
『하늘의 뿌리』 발표.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 수상.
1957년(43세):
미국 할리우드 진출
1958년(44세):
포스코 시니발디라는 가명으로 『비둘기를 안은 남자』 발표
1959년(45세):
24살 연하인 영화배우 진 세버그를 만남, 진 세버그 임신, 진 세버그와 동거하며 첫 번째 부인과 이혼, 이혼하며 전 부인 레슬리 블랜치에게 작별 선물로 준 소설 『레이디 L』 발표(해당 소설은 6주 만에 쓰인 것으로 유명하다). 진 시버그 유산
1960년(46세):
『새벽의 약속』 발표
1961년(47세):
희곡 『조니 하트』 발표, 『별을 먹는 사람들』 미국에서 발표, 외무부에 사표를 내고 외교관 퇴임
1962년(48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발표, 진 시버그와의 사이에서 아들 알렉상드르 제고 가리 출생
1963년(49세):
『레이디』 발표
1964년: 진 시버그가 워렌 비티와 불륜
1965년(51세):
『스가나렐을 위하여』 발표, 『게리 쿠퍼여 안녕』 미국 출간
1966년(52세):
『별을 먹는 사람들』 프랑스 출간
1967년(53세):
『젱기스 콘의 춤』 발표
1968년(54세):
『죄인』 발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감독으로 참여 (여주인공 진 시버그), 진 시버그와 별거
1968년: 진 시버그가 영화 <페인트 유어 웨건>의 또 다른 주연이자, 상대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불륜, 로맹 가리에게 이혼을 요구하였으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해당 영화의 다른 단역 배우와 이중으로 바람을 피우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통보로 결별한다.
1969년(55세):
『게리 쿠퍼여 안녕』 프랑스 출간
1969년: 진 시버그가 학생 혁명 운동가 카를로스 오르넬라스 나바라와 불륜
1970년(56세):
신 시버그 임신, 8월 23일 딸 니나 아 가리 출생(출생 당시부터 임신당시 약물 과다복용으로 중독증세를 앓던 니나 아 가리는 태어난 지 이틀 후 사망한다), 『튤립』 발표, 『흰 개』 발표
1971년(57세):
『홍해의 보물』 발표
1972년(58세):
『유로파』 발표, 영화 <킬!>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1973년(59세):
『마법사들』 발표
1974년(60세):
『밤은 고요하리라』 발표, 샤탕 보가트라는 가명으로 『스테파니의 얼굴들』 발표,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그로칼랭』 발표
1975년(61세):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 발표, 해당 작품으로 공쿠르 상 수상, 오촌 조카인 폴 파블로비치를 내세워 수상 거절 편지를 쓰나, 공쿠르 아카데미의 의장인 에르베 바쟁이 공쿠르상은 거절할 수 없다며 거절을 거절,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발표
1976년(62세):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가면의 생』 발표
1977년(63세):
『여자의 빛』 발표, 『영혼의 짐』 발표, 평론가들에게 '조카 에밀 아자르를 표절하러 든다'며 혹평받음
1979년(65세):
『노래하는 광대들』 발표, 『착한 아내』 발표,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솔로몬 왕의 고뇌』 발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집필
1979년: 9월 8일 진 시버그 실종, 9월 18일 사망한 채 발견, 원래 복용하고 있던 수면제 바르비투르산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였으나 타살 가능성이 현재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진 시버그는 사망 당시 임신 중이었다. 아기는 백인이었으나 로맹 가리의 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66세):
『연』 발표, 12월 2일 오후 권총 자살
1981년: 그의 유서격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출간
1984년: 『비둘기를 안은 남자』 출간
1997년: 『프랑스였던 그 사람을 위한 시가』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