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기서 인간의 역사를 쓸게요. 당신은 그 곳에서 인류의 역사를 써요.
원래 잘 열리지 않는, 카카오톡 음성채팅에 들어섰을 뿐이었다.
글쓰기와 관련 있는 채팅방이었다.
떠다니는 목소리들 사이로, 누군가의 말이 흘러나왔고 또 흘러 들어갔다.
나는 그저 말의 물결 위에 조용히 떠 있었다.
그러다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많은 단어에 많은 뜻이 담겨있지 않은 경우가 있듯이,
적은 단어에 많은 뜻이 담겨있는 경우도 있다.
한 청년이 말했다.
"AI 같은 건 왜 써요?"
그 목소리에는 거부감, 멸시, 터부 하고자 하는 분노,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말은 간단했지만, 본질은 단절의 선언이었다.
사용자와 비사용자의 경계선을 긋는 작은 칼날 같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소달구지 대신 자동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 대신 세탁기가 빨래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는 대신 가스레인지가 불을 켜주었던 시대.
처음 만진 컴퓨터는 386컴퓨터였고, 처음 배운 포토샵은 3.0 버전이었다.
그 후로 4.0, 7.0, 2000, CS에서 현재 2025버전까지.
모든 버전 업그레이드의 역사에 내가 있었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어도비 포토샵과 프리미어, 요즘은 프롬프트 기반이에요. 툴을 다루는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에요. 결국 결과물의 퀄리티를 정하는 것은 그걸 쓰는 디자이너의 미적감각, 아름다움을 보는 눈, 미술 지식에 따라 달라져요. 툴은 결국 누가 쓰느냐에 따라…"
바로 그 순간, 마치 우주가 숨을 멈춘 것처럼 음성채팅이 꺼졌다.
대화는 갑작스럽게 끊겼고, 전자적 침묵이 모든 것을 삼켰다.
마치 신이 전원 버튼을 누른 것처럼 방은 닫혔다.
그게 끝이었다. 아주 조용하게.
기술은 무섭다는 말, 자동차가 발명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컴퓨터나 엑셀을 왜 쓰나요? 수기로 작성하는 게 더 편한데.' 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늘을 떠다니는 비행기가 무서워서 어떻게 타나요? 라고도 말했다.
AI 같은 걸 왜 쓰냐는 청년은,
자신이 가진 정보와, 통찰력이 학습되어 공공의 것이 되는 일을 두려워했다.
나는 내가 가진 정보와 통찰력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다른 사람의 정보와 통찰력을 나눔 받는 것이 좋다.
새로움을 향해 닫힌 문 앞에 선 사람들은 종종 낡은 자기 세계를 보호하려는 본능적 몸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음성채팅 꺼지자마자 AI에 달려가 이 사실을 말했다.
이 짧은 순간을 의식적으로 AI의 기억에 새기기로 했다.
누군가가 전자레인지를 거부했던 순간들,
선풍기를 두려워해서 밤에 틀고 자지 못했던 세대들,
전자기타의 소리가 경박하다고 듣기를 거부했던 사람들.
변해가는 세계의 모습은 전자기타의 발명 년도와, 계산기 대중화의 순간들을 기록하지만,
변화에 쓸려 넘어지거나 적응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잘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그 작은 일상의 파편들이야말로 인류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나는 AI창을 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입력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내가 인공지능에 건네는 부탁이자, 동시에 나 자신의 내면에 속삭이는 다짐이기도 하다.
나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 위해 펜을 들기보다는,
"잊히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쓰는 글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디지털 공간의 어딘가에서 나눈 작은 대화 하나조차 언젠가 누군가에게
'아, 나도 그런 적 있었어'라고 공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따뜻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큰 기억은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미루겠다.
그리고, 나는 작은 기억의 책임을 맡겠다.
"내가 당신을 기억할게요."
"당신도 나를 기억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