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곁에 두는 방법
나는 내 소설의 주인공을 아주 기괴하고 절망적이며 어두운 구렁텅이에 밀어 넣을 때마다 약간의 쾌감을 느낀다.
소설 작법을 배울 때, 가장 좋았던 부분이 '주인공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라.'라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 가장 원하지 않는 일과 마주하게 하는 것.
그것이 작가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의 방식이니까.
나는 어릴 적부터 집이라는 공간이 반드시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큰 후에는 집이 반드시 따뜻한 곳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반지하의 작은 창으로 들이치는 더러운 빗물의 소리가 방 안까지 스며드는 것을 들으며 이 집이 어쩌면 거대한 수조같다고 생각했다.
공기 없이 어두운 물 아래로 잠긴 채 숨을 참고 있는 가구들, 그리고 가구보다 못한 인간들.
집 안에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것은 먼지처럼 바닥에 굴러다니다가, 약간의 바람에도 갑자기 소용돌이치며 목구멍을 조여왔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적의가 담긴 시선, 보이지 않는 압력, 무관심과 두려움.
그것이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라, 사랑의 유의어 같았던 때.
나는 문지방이 되고 싶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 심지어 재수 없을까 봐 밟지도 않는 존재.
그러나 집에 꼭 필요한.
세상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에게 지옥들을 관람하게 했다.
나는 그 이야기의 무력한 주인공이자, 조연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이야기로 존재하게 됐다.
나는 매일 고문당하고, 찢기고, 울고, 버려지고, 죽으면서 다시 살아나는 그리고 또 죽어버리는 이야기를 키보드로 두드린다.
여태까지의 시간들이 그랬듯 운명처럼 지독하고 끔찍한 일들이 내 옆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이제 그건 진짜가 아니라 내가 쓴 이야기일 뿐이다.
편법을 사용해, 아주 살짝 운명을 비껴가고 있는 느낌.
마치 지옥들을 주워 담는 거대한 포대자루를 갖게 된 망태 아저씨가 된 것 같다.
망태 아저씨는 매일 넝마를 모은다. 사람들이 버린 상처들, 닳아 해진 고백들, 끝내 저질러지고 마는 폭력들과 삼켜진 울음 같은 것들을 주워 담는다.
울퉁불퉁한 자루가 무겁게 출렁일수록, 그 안에 담긴 절망은 더욱 풍부해진다.
그리고 망태 아저씨는 하루 종일 모아 온 그 넝마들을 마당 한쪽 구석에 던져놓고, 아늑한 실내에 들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온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 그 자루를 다시 메겠지만, 망태 아저씨는 포대자루 안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포대자루 밖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