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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민 Nov 22. 2024

사직서를  품고 걷는 길

늦은 퇴근길 빨리 걸을 힘도 없어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데 한통의 전화가 왔다. 퇴근  상사의 전화. .... ‘ 전화했지?’, ‘오늘 늦게 퇴근했으니 혹시 내일 천천히 나오라는 건가?’ 기대감과 궁금함으로 받은 전화, 용건은 이랬다. 급하게 내일까지 해야 하는 업무가 생겼으니 근하 그거부터 먼저 하라는 내용이었다.


불안도가 높은 상사는 늘 이런 식이다. 혹시나 내일 중으로 그 일을 못할까 업무시간이 아닌데 업무를 지시한다. 매번 이렇다. 본인이 생각나면 바로 메시지를 보낸다. 어느 날은 급하게 나를 불러 갔더니, 중요한 지시사항을 단체대화방에 올렸으니 잘 전송됐는지 확인해 보란다. 본인도 확인할 수 있는데 굳이. 상대의 업무 흐름이 깨지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모두의 불만이었는데, 아무리 티를 내고 때로는 강하게 건의를 해도 사람이 변하지 않더라. 오히려 “본인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데 그런 말을   있느냐 원망의 말들만 잔뜩 쏟아냈고, 이후 우리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 들을 .


그런데 평소에 잘 넘기다가도 그때는 울컥함을 치밀어 올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왜 입술을 깨물면서까지 참아야지? 무엇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3분이면 될 것을 20분까지 늘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아 마음속에 품어둔 사직서를 괜히 떠올려보았다. 당장 낼 건 아니지만 “혼자 한 번만 더 그래봐. 아주 사직서를 던져버릴 거야!”하고 으름장을 놓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결의에 찬 마음으로 퇴근하는 길은 어쩐지 거리도 매우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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