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2017)
영화가 중반에 넘어서면서부터 주인공 무니가 욕조에서 혼자 목욕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랩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아이는 혼자 목욕합니다. 영화는 ‘무니’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무니’가 보기에 이해할 수 없거나 그다지 중요한 일은 생략되거나 화면 밖으로 벗어나기도 합니다. ‘무니’의 입장에서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자주 목욕을 했기에 그렇게만 관객에게도 보여주지만, 같은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유사 경험을 통해서 다른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노래 사이에 스미는 소리를 통해 화면 밖에서 ‘무니’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사이에 성매매를 하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심지어 그 사실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는 것도요. 우리가 그러하듯 주변 사람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엄마 '헬리'의 제일 친한 친구도 그 사실을 알고 등 돌리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정부도 그녀에게서 양육권을 뺐습니다. 엄마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고, 그래서 아이는 부모에게서 벗어나 아동보호국에서 보호되었다. 엄마가 잘못을 저질렀고, 결론적으로 벌을 받았다 하는 간결한 결론 사이에 있었던 나머지의 시간에 대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을 배우고 배웁니다. 그것은 연륜이라고 불리기도 편견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늘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생각하거나 설명할 시간도 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종종 아이들이 하는 순박한 말과 행동이 때때로 어른을 당황하게 하고 고쳐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5년 디즈니가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올랜도 부동산 매입 계획에 붙인 가칭입니다. 우리나라 어디에 지하철이나 유명한 건물이 생긴다고 하면 땅값이 오르는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디즈니월드'가 건설되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자, 인근에 관광객을 위한 저렴한 모텔이 우후죽순처럼 생겼죠. '디즈니월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습니다만, 그때 생긴 저렴한 모텔은 2008년 경기침체 이후에 주변 극빈층의 임시 거주지로 전락했죠.
영화의 주인공인 ‘무니’가 살고 있는 ‘매직 캐슬’도 바로 그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겼다가 지금은 극빈층의 임시 거주지로 전락한 모텔입니다. 즉 ‘무니’는 바로 그런 극빈층이란 말이 되기도 하죠. ‘무니’는 누가 보면 큰 언니라고 보일만큼 나이 차이가 거의 없는 엄마 ‘헬리’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헬리’의 이력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아직 10대의 솜털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헬리’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왜 남편은 없는지 궁금할 법도 하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의 몸에 가득 새겨진 문신과 입술에 피어싱만으로 신기하게도 납득이 되어버립니다.
영화는 '매직 캐슬'에 살고 있는 영화는 '무니'의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아이는 편견이 없죠. 세세한 것을 묶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한 모든 것을 인지합니다. ‘무니’에게는 극빈층이 임시 거주지라는 카테고리가 없습니다. 그저 "전쟁에서 싸웠던 사람, 맨날 맥주를 마시는 사람, 병에 걸려서 다리가 커진 사람, 경찰에게 자주 체포되는 사람, 자기가 예수랑 결혼한 줄 아는 사람"이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의 단편으로만 이해합니다.
디즈니월드로 가는 국도의 길목에 '매직 캐슬'은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일 '디즈니 월드'에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정도로 가깝지만, '매직 캐슬' 모텔의 풍경은 디즈니월드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 대조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되묻게 되지만, 대안을 경험한 적 없을 '무니'는 그것이 궁금할 리 없습니다. 놀이터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기에 놀이터가 왜 없는지 묻기보다, 나름의 놀이터를 만들죠.
그 흔한 놀이터조차 없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놀거리를 찾아내는데, 그건 보통 하면 안 되는 것들이죠. 몰래 관리실에 침투해서 전기를 내리거나, 길에서 구걸해서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 침대에서 뭘 먹고 손을 베개에 닦거나, 엄마한테 망신이라고 하거나, 관광객에게 팁을 강탈하거나, 차에 누가 침을 많이 맞히나 놀이를 한다거나, 빈집에서 놀다가 불을 낸다거나. 편견이 없다는 말은 해도 되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의 구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주 가정교육을 탓하게 됩니다. 아마 맞겠죠. '무니'의 엄마 '헬리'는 무니에게 뭘 해야 할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뭘 해도 되는지와 뭘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10 대티를 벗지 못한 '헬리'는 얼마 전 직장까지 잃어 하루에 40불이 안 되는 숙박요금을 버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헬리 역시 가족이 있을 테니, 이쯤 되면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보지만, 이미 해봤고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듯 영화에서는 '헬리'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어떠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심지어는 가족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사실 '헬리' 역시 '무니'를 보살피기보다는, 어쩌면 부모보다는 자식, 어른보다는 아이에 가까워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미 성인인 '헬리'에게 도움을 주고 보살필 그 역할을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떠맡을까 하면 누구도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막막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군가 가르쳐줄 사람조차 없는 '헬리'는 그녀가 아는 내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무니'가 놀이터도 없는 곳에서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자리를 친구를 통해서, 정부를 통해서 얻고자 하지만 모두 무산되자, 딸 '무니'와 함께 근처 호텔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싸구려 향수를 판매하거나, 훔친 놀이공원 티켓을 팔죠. 그러다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성매매'까지 손대게 됩니다. 그리고 장소에 대한 대안조차 없던 '헬리'는 자신과 딸이 살고 있는 '매직 캐슬' 323호를 성매매 장소로 이용하게 되죠. 성매매가 벌어지는 동안 딸은 목욕을 하되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두고 말입니다.
'헬리'에게는 거의 유일했고 크고 작은 일을 상의하고 기댔던 친구조차 등을 돌리고, 부모로서의 자격을 발 탈당하여 자신의 딸 '무니'를 더 이상 양육할 수 없게 됩니다.
영화를 모두 함께 보고도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태도는 조금 달라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엄마로서의 과오와 무능을 인정하고 딸을 포기하는 ‘헬리’와 자의와 상관없이 아동보호국의 판단으로 입양이 결정된 ‘무니’. 영화는 이렇게 마음대로 정해지는 세상을 납득할 순 없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간신히 깨달은 ‘무니’가 친구 ‘젠시’와 함께 디즈니월드로 도망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해 “좋은 영화는 세상을 구하는 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저 역시 우리가 정답이라 믿고 내렸던 결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유효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