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마이클 이스터' 편리와 풍족의 시대가 빼앗아간 것들에 대하여

by 현월안




인간은 역사상 가장 편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계절은 냉난방으로 조절되고, 배고픔은 냉장고 문 하나로 해결되고 지루함은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사라진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삶은 굴러가고, 기다림은 버튼 하나로 지워진다. 불편함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삶이 이토록 편안해졌는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이전보다 더 지치고, 더 외롭고, 더 불안해 보인다.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일까.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편안함만을 향해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편안함은 분명 인간이 오래도록 꿈꾸어온 것이다. 추위를 피하고 배고픔을 해결하고 위험을 줄이고 그것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인간의 뇌는 가능한 한 에너지를 아끼고 고통을 피하도록 진화했다. 더 쉽고 더 편한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계단보다 에스컬레이터를 선택하고 걷기보다 자동차를 타고, 생각하기보다 화면을 바라본다. 인간의 선택은 대개 틀리지 않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종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안함에는 묘한 속성이 있다. 한 번 익숙해지면 더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의 편안함은 오늘의 기준이 되고, 오늘의 편안함은 내일의 부족함이 된다. 편안함의 기준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그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더 많은 편안함을 요구한다. 마치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서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편안함은 고통을 줄여주지만 또 삶의 긴장과 생명력까지 함께 지워버리기도 한다. 몸은 움직임을 잃고 마음은 고요함을 잃는다. 인간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의 공백조차 두려워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걷고 또 견디고 기다리며 살아왔다. 사냥을 위해 몇 시간을 걸었고 추위를 버텼으며, 굶주림을 지나 식탁에 도달했다. 삶은 언제나 약간의 불편함과 함께 있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인간은 강해졌고, 그 속에서 기쁨의 감각도 더욱 또렷해졌다.

목이 말라야 물의 시원함을 알 수 있고 긴 여정을 지나야 집의 따뜻함이 깊어진다.



불편함은 단지 견뎌야 할 고통이 아니라 삶의 감각을 깨우는 장치이기도 하다. 조금 걷고 나서 마시는 물 한 잔, 몸을 쓰고 난 뒤 찾아오는 잠, 긴 하루 끝에 느끼는 평온함. 이런 것들은 편안함 속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감정들이다.



삶의 의미 역시 비슷하다. 의미는 대개 약간의 수고와 불편함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고, 어려운 일을 끝까지 해내고, 스스로에게 작은 도전을 건네는 순간들 속에서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발견한다.



그래서 때때로 삶은 역설을 보여준다. 편안함을 줄이면 오히려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조금 힘든 길을 선택하면 마음은 더 단단해진다.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오히려 쉽게 지치지만,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때 삶은 더 선명해진다.



물론 다시 과거의 거친 삶으로 애써 돌아갈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다만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약간의 불편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고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것, 조금 더 걸어보고 조금 더 기다려보는 일. 그것은 거창한 도전이 아닐지라도 삶의 감각을 되살리는 작은 선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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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은 나를 보호하지만, 불편함은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어쩌면 삶의 깊이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거칠지도 너무 안락하지도 않은 어느 지점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답게 숨 쉰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라도 삶에 작은 거친 숨을 들여놓아야 한다.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불편해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이다. 그때 알게 된다. 삶의 진짜 활력은 완벽한 편안함 속이 아니라, 그 울타리를 살짝 넘어선 곳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