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울프' 순간 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디지털 화면이 인간의 하루를 가득 채우는 시대다. 눈을 뜨면 스마트폰의 빛이 먼저 사람을 맞이하고, 잠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는다. 메시지, 기사, 짧은 글, 영상 속 자막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정말 뭔가를 읽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인지신경과학자 '매리언 울프'는 그녀의 책 '다시, 책으로'에서 다소 충격적인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라고. 읽기는 인간에게 본능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문화적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책을 읽는 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서서히 읽는 회로를 만들어간다고.
그러나 지금은 그 소중한 회로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의 읽기는 빠르다. 놀라울 만큼 효율적이다. 필요한 정보는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고,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 화면을 위로 훑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 속도는 때로 생각의 깊이를 앗아간다. 긴 문장을 따라가며 사유하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문장의 숲을 걷기보다 단어 몇 개를 건너뛰며 길을 가늠한다.
마치 강가에 서서 물의 흐름을 바라보는 대신, 강 위를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만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울프'는 이 변화를 '읽는 뇌의 변형'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환경에 오래 노출될수록 인간의 뇌는 빠른 탐색과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보면 책 속 깊은 문장들을 따라가며 사유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논리의 결을 천천히 짚어가는 능력, 깊이 읽기가 점점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깊이 읽기는 독서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조용하면서도 위대한 능력이다. 한 문장을 오래 바라보며 그 안의 감정을 느끼고, 문장 너머의 사람을 이해하고, 그 생각을 나의 삶과 연결시키는 힘. 흔히 소설 속 인물의 눈물을 이해하고 역사 속 인물의 선택을 고민하고, 철학의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는 이유도 그 깊이 읽기의 힘 때문이다.
읽기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토대다. 누군가의 생각을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타인의 관점을 상상할 줄 아는 사람은 성급히 판단하지 않는다. 깊이 읽기는 깊이 생각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을 쓴 '울프' 자신도 이런 변화를 몸소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그녀는 젊은 시절 깊이 감동하며 읽었던 '유리알 유희'를 다시 펼쳤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그 문장들을 예전처럼 따라가지 못했다. 긴 문장은 쉽게 끊어지고 집중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아온 시간이 그녀의 읽기 방식마저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 순간 '울프'는 읽기 능력은 한번 얻었다고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용하지 않으면 서서히 약해지고, 잊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울프'는 디지털 문명을 거부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한 가지 조용한 제안을 건넨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라고.
조금 느리게 읽어도 괜찮다고. 한 문장을 읽다가 생각이 멈추면 잠시 창밖을 바라보아도 좋다고.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내면의 사고가 자라는 시간이다.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는 동안 마음은 타인의 삶을 여행하고, 세상의 복잡한 질문들과 조용히 대면한다.
어쩌면 깊이 읽기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기 위한 인간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 마련된 작은 쉼표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때때로 책을 펼쳐야 한다. 누군가의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잠시 세상의 속도를 내려놓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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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남기 위해. 디지털의 빛이 아무리 눈부셔도, 책 속에는 여전히 인간 정신이 천천히 숨 쉬는 공간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조용한 공간 속에서 다시 배운다.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의 마음과 또 다른 인간의 마음이 조용히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