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점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우연히 받은 티켓을 가지고 어느 철학과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의는 조용하게 이어졌다. 그 고요함은 사색의 침묵 같기도 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독백 같기도 했다. 그 교수는 삶과 존재, 인간의 자유에 대해 천천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의 말에 머물지 않았다. 귀로는 강의를 듣는 듯했지만 손길은 모두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작은 화면 위에서 손가락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그 안에서만 무언가가 분주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강의를 듣는 이도 있었지만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다시 고개는 숙여지고 눈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학이 눈앞에서 이야기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다른 세상 속으로 접속해 있는 듯했다.
세상은 점점 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눈앞에 있는 사람보다 손안에 있는 화면이 더 많은 관심을 끈다. 전철 안에서도, 길을 걸을 때도, 카페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은 대체로 아래를 향한다. 잠깐의 빈 시간만 생겨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낸다. 마치 그 작은 기계가 손안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손바닥만 한 화면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과 뉴스, 이야기와 재미를 만날 수 있다. 궁금한 것은 몇 번의 검색으로 바로 답을 얻는다. 길을 잃어도 지도는 금세 길을 알려주고, 낯선 단어도 순식간에 뜻이 밝혀진다.
어쩌면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 낸 가장 영리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그 작은 기계 하나로 인간은 세상의 방대한 지식 창고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 안으로 자꾸만 들어가고 싶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커질수록 어딘가 조금 낯선 장면들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점점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잠깐의 정적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전철 안 풍경도 모두 작은 화면 속에 빠져있다. 창밖을 바라보거나 멍하니 생각에 잠긴 얼굴은 점점 줄어든다. 대부분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저마다 다른 세상 속을 여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문득 옛말 하나가 떠오른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그 말은 원래 겸손을 가르치는 말이다. 알차게 익은 벼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듯 사람도 성숙할수록 겸손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의 풍경을 보면 마치 그 말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된다. 이제 사람들은 익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화면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겸손의 몸짓이 똑같은 자세로 바뀐 셈이다.
그렇다고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시대의 흐름은 그렇게 변해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은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고 인간은 그 속에서 또 다른 균형을 찾아왔다. 문제는 기술이 첨단을 달리고 있고 또 인간은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일 것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도구가 인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때로는 인간이 기계를 부린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 기계가 인간의 시간을 부리고 인간의 시선을 꼼짝 못 하게 한다.
손 안의 화면은 너무도 영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영상, 새로운 정보와 자극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잠깐만 보려 했던 것이 어느새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만다. 그 사이에서 바깥세상은 조금씩 심심해 보이기 시작한다.
현실의 삶은 느리고 단순하다. 길을 걷는 일도,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일도 화면 속의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비하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손 안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인간은 두 개의 세상 사이를 오간다. 하나는 손 안의 화면 속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의 세상이다.
문제는 어느 순간 두 세상의 무게가 달라질 때다. 온라인의 세상이 점점 더 흥미로워질수록 현실은 점점 더 심심하게 느껴진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공공의 공간에서 나누던 대화들도 점점 사라지고, 대신 각자의 화면 속에서 세상과 만난다. 연결은 더 넓어졌지만,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만남은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버리고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기술은 이미 인간의 삶 속 깊이 들어와 있고 그것이 주는 편리함은 분명하다. 다만 가끔은 질문 하나쯤 던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간이 기계를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기계가 인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철학은 어쩌면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래서 가끔은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 놓는다. 화면이 꺼지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침묵이 남는다. 하지만 그 침묵에서 다시 내 주변을 바라보게 된다. 창밖의 풍경이 조금 더 또렷해지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표정도 눈에 들어온다. 바람의 결이나 거리의 소리도 다시 들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발로 서 있는 현실의 세상이 꽤 넓고 깊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ㄹ
아마 삶의 재미는 어느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손 안의 작은 화면 속에도 있고, 내가 걸어 다니는 거리와 하늘 아래에도 있다. 그러니 가끔은 고개를 들어 본다. 화면에서 눈을 떼어 본다. 그리고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다시 인간다운 속도를 회복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검색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