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더 피면 나아질까

봄 햇살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여 본다

by 현월안




겨울의 찬기가 아직 그늘에 남아 있다. 계절은 봄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몸과 마음은 그 속도를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꽃은 피어 봄 꽃을 세상에 내밀었건만, 난 여전히 코트 속에서 망설인다.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는데도, 손은 습관처럼 주머니를 찾고 마음은 아직 한기를 기억한다. 어쩌면 계절은 바깥에서 먼저 시작되지만, 봄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문우들을 만나는 날이라서 버스를 탔다. 버스 안 풍경은 그 어긋난 시간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겨울의 패딩과 한여름의 반소매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모습은 마치 저마다의 계절을 따로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 누군가는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고, 누군가는 이미 여름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대부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듯하다.



그 풍경 속에서 잠시 위안을 받는다. 나만 늦은 것이 아니라는 것과 나만 계절을 놓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사람은 늘 다른 이와의 간격 속에서 속도를 확인하고, 그 속도가 너무 어긋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버스 안에서 반소매 차림으로 부채질을 하는 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시간은 이미 훨씬 앞서 있다. 같은 봄을 지나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온도를 살아가는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부럽다. 젊음이란 어쩌면 계절보다 먼저 움직이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까지도 미리 받아들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가벼움.



나이가 들면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진다. 이 따뜻함이 진짜인지, 이 변화가 오래갈 것인지. 그래서 쉽게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쉽게 마음을 풀지 못한다. 계절을 의심하는 것은 삶이 오래되면 느끼는 본능이다. 또 삶이 그렇다. 기회가 와도 망설이고, 변화가 시작되어도 한 발 뒤에 서서 바라본다. 혹시 다시 추워지지는 않을까,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이미 시작된 봄 앞에서 겨울을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버스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던 온기다. 서서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빛.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조금 불편해지고, 조금 위치가 달라져야 보이는 것들. 편안함 속에서는 지나쳐버리는 따뜻함이, 어떤 불편함 속에서는 또렷하게 다가온다.



그 햇살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여 본다. 얼굴이 따가울 만큼 가까이 다가오는 빛을 그대로 견디며, 그 온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한 손은 아직 코트 안에 있다. 따뜻함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대비하려는 마음. 그것이 자금의 나의 모습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서늘한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깥의 봄과 안쪽의 겨울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계절 속에서, 여러 겹의 시간을 입고 살아간다. 겉옷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온도, 얇지만 여러 겹을 입은 옷처럼 쌓여 있는 경험과 기억들. 그래서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금씩 스며들고, 조금씩 밀어내며 내 안에 자리를 잡는다.



멀리 시골로 내려간 문우가 보내오는 봄꽃 사진은 또 다른 시간을 전해준다. 이미 만개한 풍경 속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계절을 살고 있다. 같은 나라, 같은 하늘 아래서도 계절은 이렇게 다르게 흐른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문득 봄은 거리만큼이나 마음의 준비에 따라 도착하는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꽃이 더 피면 나아질까. 그 물음은 꽃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일지도 모른다. 더 따뜻해지면, 더 확실해지면, 더 많은 증거가 쌓이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그래서 봄은 받아들이는 계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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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찬 공기가 남아 있어도 햇살 한 조각을 믿어보는 순간 이미 시작되는 것. 아직 덜 한 온기 속에서도 마음을 여는 여유. 그것이 나의 봄이다. 그래서 오늘, 코트를 입은 채로라도 괜찮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도 중요한 것은 내가 이미 그 햇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따뜻함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봄은 그렇게 내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