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이미 시간 속에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으로 되돌아가는 장소

by 현월안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으로 되돌아가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마음속의 감각을 정확히 짚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실제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과 기억이 함께 빚어낸 마음의 풍경이고 그 풍경을 고향이라고 한다.



가끔 형제자매들과 시간을 맞춰 고향을 찾는다. 부모님이 모두 떠나신 뒤에도 맏이 남동생이 고향 집을 지키고 있어서 우리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고향을 찾는다. 지난주에 형제들은 모두 고향집에 모였다. 고향 가는 익숙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은 이미 오래전 고향 마을 어귀에 먼저 가 있다. 그러나 막상 고향에 들어서면 이상하게도 어딘가 낯설다. 예전에 개울은 정비되어 직선의 수로가 되었고, 들판은 집들이 들어서 낯선 풍경이 되었다. 오래된 나무도 사라졌고, 골목길은 단정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고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많이 변해 있는 고향은 매번 갈 때마다 다른 풍경이다. 오히려 멀리서 눈을 감고 고향을 떠올릴 때 그 모습이 더 또렷해진다. 어린 시절의 개울물 소리, 저녁밥 짓는 연기 냄새, 마당에 떨어진 감을 주워 먹던 기억, 밤송이가 발밑에서 톡 터지던 소리 같은 것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천천히 떠오른다. 실제의 고향보다 기억 속의 고향이 더 정겹고 따뜻하다. 고향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집도 변하고 길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 변화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인간은 지나간 시간을 완전히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시간을 기억 속에서 더 아름답게 다듬어 간다. 고향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리움이고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향의 아름다움은 기억 속에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마을 어귀에서 마주치던 낯익은 얼굴들은 하나둘 떠났고, 그 자리에 낯선 사람들이 살아간다. 예전에는 감나무 아래에 떨어진 감이 지천이었고, 밤나무 밑에는 밤송이가 발에 차일 만큼 많았다. 어린 시절의 풍요로움은 마음의 풍요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다. 지금의 고향은 더 정돈되고 더 편리해졌지만, 그때의 풍경과는 다른 시간 속에 있다.



고향은 약간의 거리와 함께 존재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고, 너무 멀어지면 잊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기억된다. 마치 오래된 유적을 바라보듯, 때로는 지나간 시간을 상상한다. 완전한 것보다 그때의 고향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내 마음속 고향은 살아 있는 고전과도 같다.



오랫동안 고향을 지키고 사는 사람은 고향의 의미를 깊이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너무 익숙한 풍경은 때로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사람, 다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 또 돌아갈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고향은 마음속 그리움이다.



인간은 어쩌면 평생 어떤 불빛을 향해 돌아가려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마음속으로 돌아가는 곳, 마지막에 떠올리는 한 단어가 고향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이름이고 또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속에 고향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고향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삶의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세상이 거칠어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마음 한쪽에 돌아갈 풍경을 남겨 두는 것 말이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별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남겼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마음속 별에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닿을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그의 말은 어쩌면 인간의 그리움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곳 같지만 진짜로 그리워하는 고향은 이미 시간 속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의 풍경과 부모님의 목소리, 저녁연기와 마당의 햇살은 다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는 별처럼 멀리 있다. 그렇지만 그 별을 마음에 품고 사는 동안 그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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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돌아가서 사는 곳이라기보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을 밝혀 주는 불빛이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강처럼,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기억의 강이다. 그래서 인간은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가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 위에서 또 힘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