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서예를 공부하고활발하게 작품 활동하는 서예가 친구에게 서예작품을 선물 받았습니다 오랜 시간 서예와 함께한 시간을 알기에 그 고마움에 걸맞게 거실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걸어 두었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서예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더라고요 '조화롭게 잘 쓴 글씨'라며, 칭찬을 하고 작품을 보면서 쓰여 있는글씨를 큰 소리로 읽고 있더라고요 내용을 다 알고 읽었다는 듯이, 마치 표정이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해냈어'하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밝게 웃는 남편의 표정은그간 보지 못했던, '맑은 순수'가 담긴 웃음이었어요 한자로 쓰인 작품 속에는 361개 한자가 빼곡히 쓰여 있었습니다 웬만큼 한자에 자신이 있었던지 남편이 재미있는 제의를 하더라고요 서로의 한자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서예작품 속에 들어있는 한자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자는 제안이었어요
'정말? 나에게 도전을? ㅎㅎ 아니 될 텐데...'
약간은 비꼬는 말투를 섞어서,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한자 실력이 그래도 '내가 좀 괜찮지 않을까'라고생각이 있었던 것은, 그동안 고등논술을 지도하면서, 그리고 나의 글을 쓰면서, 나 또한 오랜 기간 서예를 하면서 수많은 공모전에 입상을 했었기때문에 여러 가지 직접적인 연관과 반드시 필요에 의해서, 한자의 낮은 급수부터 시작을 해서 긴 시간에 거쳐서, 한자 1급 자격증을 오래전에 따 두었어요 그래서 나에게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알차게 쓰임이 아주 많았습니다 한자 1급이 쉽지 않은 것이, 엄청난 글자수를 기억하고, 자유롭게 읽고 쓰기가 되어야 주어지는 급수라서, 단기간 내에는 쉽지 않은 것이지요 그걸 믿고서 '내가 좀 낫지 않을까?'라며 여유를 부렸던 것이지요
하지만남편이 한자 자격증은 없지만, 살짝 견제가
되었던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차 한잔을 옆에 두고
꼼꼼하게 신문을 읽는 것을, 소소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리고 분야별로 괜찮은 사설은 스크랩을 해가며 한번 더 꺼내서 읽어보는 습성과, 신문 속에 들어있는 어려운 한자와, 새로운 경제용어를 신문 공란에 써가면서 익히는, 오래된 루틴이 있어서 사실은 아주 살짝 궁금증이 있었던 것이지요 특히 신문 사설면에는 고전에나 나오는 어려운 한자가 종종 쓰여있어서,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익히는 것이, 무서운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결을 해봐야 알 것 같은 생각이 사실은 살짝 들었지요
서로가 공정하게 룰을 정하기로 하고,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프린트해서 문제지를 만들고, 한 글자에 1점씩 부여해서 만점이 361점, 시험시간은 30분, 그리고 상금은 거하게 걸어두었어요 패한 사람이 아주 깨끗하게 백만 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서로가 승부욕이 발동해서, 마치 대단한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강한 의지와 둘의 집중력은 불꽃 튀기듯이 풀가동하고 있더라고요
드디어 시험이 시작되었어요 ㅎㅎ
수월하게 잘 풀리다가도, 잊혀진 기억의 오류라고 할까요 비슷하면서도 흐릿하고, 긴가민가하는 기억 속에는 제자리만 맴돌 뿐 머릿속이 하얗더라고요 쉽게 거침없이 풀리다가도 혼동이 되는 문제에서는 일단 멈춤이 반복되더라고요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특히 한자시험의 묘미는 공부의 결과가 정직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정답을 정확하게 기입했을 때 그 스릴은 정말 시원한 쾌감이있습니다 시간은 정해진 시험시간보다 짧게 썼지만, 지워진 기억은 그 자리를 맴돌 뿐, 다시 기억이 살아나지는 않더라고요
채점을 해 보았더니, 남편은 345점 나는 348점작은 차이로 이기기는 했지만, 사실은 나의 실패한게임이고 면이 서지 않은 상황이지요 그때의 1급을다독이며 잘 지켜내지 못한 것을, 세월이 흐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여기고, 지워진 기억쯤으로 그냥 두었던 무심함은, 가지고 있는 기억을 지키려는 것과, 새로이 기억하려는 노력을, 둘 다 하지 않았던 결과이지요 매일 늘 꾸준히 하루도 빠짐없이, 저기서 다가오고 있는 거북이에게 무참히 깨진 것이지요 이대로라면 조금 있으면 그 거북이는 내 옆을 지나쳐 가겠지요. 다시금 가지고 있는 보석을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1급 한자 자격증을 가진 날 많이도 행복했는데 말입니다 보석이 술술 빠져나가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금 지켜내야겠습니다.